미국의 유네스코 재가입 의미
6월 30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특별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압도적 다수로 미국의 재가입을 승인했다. 이후 7월 10일 미국이 유네스코 헌장을 공식 채택함으로써 유네스코는 다시 194개 회원국 체제가 됐다. 미국의 재가입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정우탁 교수 (제4-5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장)가 짚어봤다.
두 번의 탈퇴와 두 번의 재가입
2023년 7월, 미국이 마침내 유네스코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필자가 1982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입사했던 당시, 공교롭게도 그해 미국은 ‘신국제정보질서’1) 결의안 채택을 이유로 유네스코를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1984년 미국이 공식적으로 유네스코를 탈퇴하면서 유네스코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됐다. 유네스코는 생존을 위해 스페인 출신의 마요르 사무총장을 선임하고 신국제정보질서를 폐기하는 등 방향을 선회하였으나, 2002년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이 재가입할때까지 계속 직원을 감축하고 사업을 축소해야만 했다.
2002년 유네스코로 복귀한 것도 잠시, 미국은 2011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회원국들의 투표를 통해 승인되자 ‘미국이 인정하지 않은 정치적 실체(political entity)’가 가입했다는 이유로 다시 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고,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은 다시 유네스코 가입을 검토했는데, 그 배경에는 유네스코에서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대체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은 지난 6월에 공식적으로 유네스코 재가입 의사를 밝혔고, 유네스코는 6월 29-30일 특별총회를 소집해 해당 안건을 처리하면서 미국은 다시 유네스코로 돌아왔다.
재가입의 의미와 제언
미국의 재가입이 유네스코의 보편성을 강화해서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 유네스코를 두 번씩이나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했다는 사실은 유네스코와 미국이 앞으로 깊은 성찰을 통해 서로 신중하게 상대방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제 유네스코가 미국 없이도 생존하는 자생력을 지녔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비록 국제기구 중에서 유네스코는 아주 가난한 국제기구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 지정과 인공지능 윤리 규범 제정, 해양학 발전과 언론의 자유 보장 등 유네스코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펼쳐 왔다. 미국도 이를 인정하고 유네스코를 존중하며, 나아가 보다 잘 활용하겠다는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
유네스코의 입장에서는, 미국 역시 그동안 유네스코를 대신할 다양한 카드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예컨대 교육 분야의 경우 미국은 유니세프 및 세계은행과 더불어 유네스코의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 EFA)’ 6가지 목표 중에서 ‘초등교육 보편화’와 ‘여성’만을 뽑아 유엔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세계은행은 2002년부터 ‘EFA Fast Track Initiative’를 주관하면서 초등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쌓았고, 이런 전문성을 토대로 2012년경 ‘Global Partnership for Education(GPE)’이라는 교육분야 다자기구를 설립하고 지난 20년간 약 15조원의 기금을 모아 최빈국과 개도국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2년에는 ‘International Finance Facility for Education(IFFEd)’ 이라는 또 다른 교육분야 다자기구가 설립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깊이 인식하여 이들 국제기구와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네스코 모두는 협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한 이후 중국은 유네스코 사무부총장을 배출하는 등 다자외교 분야에 공을 들여왔다. 미국이 중국의 이러한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복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제 미국도 국제기구 탈퇴가 결국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국과 각 회원국 역시 다수결에 입각한 일방적 의사결정보다는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제기구에서 가장 좋은 의사결정 방식은 다수결이 아니라 막후 협상을 통한 합의(Consensus)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정우탁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