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조교수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은 매년 전 세계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달성한 여성과학자 5명에게 세계여성과학자상을, 15명의 전도유망한 신진 여성과학자에게 인터내셔널 라이징 탤런트(IRT)상을 수여한다. 지난 6월 23일 파리에서 진행된 ‘2022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서 최소영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연구조교수가 IRT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다양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을 생물학적 방법으로 생산하는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 해결에 기여하고 있는 최소영 교수를 만나 보았다.
— 먼저 올해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인터내셔널 라이징 탤런트(IRT)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과 함께 이번 수상을 가능케 한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감사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 큰 상인지 몰랐는데, 시상식에서 다른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니 정말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기쁘고, 앞으로 더 훌륭한 리더 연구자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연구분야는 생명공학 중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 분야입니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핵심 기술로 생물체의 대사 활동을 조작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특성을 갖게 하는 기술인데요. 저는 미생물 중에서도 박테리아(세균)의 대사를 조작해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다양한 화합물, 특히 바이오플라스틱 물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은 동식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배양이 쉽고 윤리적인 이슈도 없어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김치나 막걸리 제조 과정도 미생물의 대사 과정이 적용된 예라 할 수 있지요.
— 이번 시상식에서 교수님께서는 본인의 연구가 ‘탄소중립’과도 연계된다고 설명해 주셨는데요. 그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대부분 석유로부터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석유화학물질입니다. 석유화학공정의 생산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고, 사용 후에 자연에서 거의 생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폐기하는 데도 탄소 배출 및 여러가지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을 석유가 아닌 바이오매스 기반의 미생물을 통해 만들어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 연구가 바로 미생물의 대사공학을 통해 바이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미생물을 개발하는 연구입니다. 이전에는 옥수수와 같은 식용으로도 이용 가능한 바이오매스가 많이 활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비식용 생물자원인 나무 껍데기, 지푸라기, 농업 부산물 등으로부터 당질 원료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식량위기 문제에서 보다 더 자유롭고, 친환경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경우 사용 후에 땅이나 바다에 버리게 되면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탄소 배출 없는 친환경 순환 사이클을 이루게 되므로 기존 플라스틱 대비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 올해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시상식은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성대하게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개최됐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자리가 여성과학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특히 기억에 남으셨나요?
파리에서의 일정은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시상식에 참가하는 경험도 특별했고, 여성 과학자만 모이는 자리도 처음이었으며, ‘블랙타이’ 시상식을 참가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블랙타이’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어떤 것을 입어야 되나 고민하는 것부터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이번 시상식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2020년도 세계여성과학자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에디트 허드(Edith Heard) 교수(독일 하이델베르크 유럽분자생물연구소 소장)의 연설이었습니다. 허드 교수는 제1회 세계여성과학자의 날(2016년 2월 11일)에 당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The world needs more science, science needs women”(세상은 과학을 필요로 하고, 과학은 더 많은 여성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앞단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당장 보이지 않는 성과를 향해 나아가는 직업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일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거나 동기를 잃을 때도 있었어요. 이런 저에게 허드 교수의 연설은 과학자야말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책임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고, ‘리얼 임팩트’(real impact), 즉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도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전한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며, 또한 삶을 즐기라”고 한 조언도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시상식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IRT 수상자들이 모여 며칠간 함께 교육을 받고 친목을 다지는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여성 과학자로서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 인류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계 내에서도 성평등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여성과학자의 발굴과 지원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여성 과학자로서 그간 겪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운이 좋게도 지금껏 공부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크게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딸만 셋인 ‘딸 부잣집’의 장녀로서 ‘성별에 상관 없이 큰 꿈과 높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하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지금도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 속에서 이렇게 계속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는 많이 배워서는 안 된다”라든지 “이래서 여자와 같이 일을 하면 안 된다”와 같은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그 말이 제게 상처가 되거나 실질적인 어려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수상 관련 기사 댓글 중에 여성과학자상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성평등과 관련된 문제 및 인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단기간에 극복되거나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이 상황 속에서 늘 제 분야에서 실력을 쌓고, 전문성을 가지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궁극적으로 인식 개선 및 차별을 해소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과학계 내의 성평등을 증진하는 것 한편으로, 유네스코는 ‘여성과 과학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타파하는 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과학계에 여성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아울러 과학에 관심 있는 여학생들에게 선배로서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분야가 특정 성별에 더 유리하거나 잘 어울린다고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고, 각 개인의 능력과 성향 차에 따라 어울리는 분야가 있다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다양성이야말로 더 열린 사고와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므로 과학 발전에 있어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인공지능 관련 연구에서 들었던 문제가 떠오릅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개발자의 편향이 반영되거나, 인공지능이 과거의 ‘빅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편향이나 차별도 함께 학습하게 되어 결과물에도 그것들이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 사회의 차별 요소를 배제하고 보다 양질의 데이터와 합리적 논리에 기반한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여성의 의견과 시각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인공지능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계를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성평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시작하는 단계의 연구자로서 앞으로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후배들께 하고 싶은 말은, 제가 과학계에 종사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으며, 앞으로 연구자로서 더 이룰 것이 기대된다는 사실입니다. 힘들 수도 있지만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낄수 있는 분야인 것도 분명합니다.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고 뛰어들어 훗날 함께 연구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국내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을 시상한 지도 어느덧 21년이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2020년 제19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펠로십 수상자이기도 한데요. 국내 여성 과학자의 활동 증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제가 여성 과학자로서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앞으로 출산과 육아와 연구를 잘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연구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하기보다는 한 질문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특성이 있어서,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안에 효율적으로 마무리한다는 개념과는 잘 맞지 않는 성격의 일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여성 연구자와 과학자로서 출산과 육아를 포함한 미래를 계획하면서 이 직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령 선택하더라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중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출산이나 육아 관련 지원이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들이 보다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책적인 부분 외에도 여성과학자상이나 여성 단체 등의 조직 활동을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고, 격려하고 힘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도 여성이 꾸준히 과학계에 종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실제로 이번 로레알-유네스코 여성 과학자상을 수상하면서 연구 측면에서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 과학자로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을 지원하고 있는 유네스코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최연수 과학청년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