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동안 단 한 번도 해체된 적이 없는 탑 안에는 어떤 놀랄 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지난 2015년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 백제 관련 유적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면서 백제의 옛 도읍지들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그중 부여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실 부여는 700여 년에 달하는 백제의 역사 중 마지막 123년 만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의 끝자락,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을 맞은 장소다. 이 때문에 부여는 백제의 황금기를 지켜보았던 이웃 도시들보다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부여에서 나온 유물이나 현재 그곳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만으로도 충분히 당시의 백제 문화가 찬란하고 또 눈부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가 이를 증명하고, 또한 지금부터 이야기할 정림사지 5층석탑이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부여를 찾으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정림사지다. 이곳에 정림사지 5층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목조 건축물을 흉내 내서 지은 이 석탑은 특히 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새벽에 가서 볼 때 그 우아함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운치 있는 자태를 뽐낸다. 이 석탑을 주의 깊게 살펴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아담하게 느껴지던 탑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훨씬 웅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 가진 완벽한 비례감 덕분이다. 탑신의 기둥은 살짝 안으로 들어가 있으며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지도록 하여 안정감을 주었고, 지붕돌은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가다가 끝이 살짝 올라가 경쾌함을 자아낸다. 찬란했던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백제는 마지막 숨을 고르며 정림사지 5층 석탑과 같은 명품 문화재를 남길 수 있었는지, 나는 이 점이 늘 궁금하다.
이것 말고도 이 탑에 호기심이 생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아직 단 한 번도 해체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석가탑이라고 부르는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에서는 해체 보수 과정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옆 동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과정에서는 당시까지 실화로 여겨지던 서동 설화의 이야기와 배치되는 내용이 담긴 사리봉안기(미륵사를 창건하고 사리를 봉안한 계기를 새겨둔 것)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옛 석탑을 해체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진실을 향해 성큼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여태껏 한 번도 해체 보수 되지 않은 석탑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무려 1400여 년간 지켜온 비밀의 내용이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기에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순간의 아픔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 탑은 한때 평제탑(平濟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백제를 정복하고 세운 기념탑이라는 뜻이다. 왜 사비 시대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이 탑이 이러한 오명을 쓰게 된 것일까. 그것은 탑신에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점령할 때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복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정방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 자기의 전공을 어떻게 해서라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이 석탑에 아픈 상처를 남겼으리라. 백제 멸망의 순간을 지켜본 것도 모자라 그 아픔이 몸에 새겨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1400년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백제 문화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탑. 이것이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지 모른다.
‘부여’ 하면 많은 사람들이 ‘삼천궁녀와 낙화암’으로 대변되는 망국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 깃든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는 부여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부여는 백제 부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왕이 치열한 개혁을 펼쳤던 곳이자, 마지막까지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 피웠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모두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태성 역사강사· 저술가
◈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부여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끝으로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유적은 475년~660년 사이의 백제 왕국의 역사를 잘보여주고 있으며, 중국의 예술, 종교, 건축술, 도시계획 원칙 등을 받아들여 백제화(百濟化)하고, 이를 통해 이룩한 세련된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설명: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