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호] 알.쓸.U.잡
아~ 아~~~~
신라의 바아아암이이여어~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는 구우나아~
경주에 가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거리는 노래.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다. 그래. 경주의 밤. 그때는 저런 종소리가 귓가에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지금 경주의 밤에는 들리는 것도 있겠지만 볼 것이 더 많다. 경주는 낮 시간에 우리 앞에서 자태를 뽐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2라운드 패션쇼’를 우리 앞에 보여준다. 정말, 정말 ‘아름다운 천 년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곳. 경주에 가면 반드시 신라의 밤, 경주의 밤을 만나봐야 한다.
경주의 밤. 그것을 보기 전에 우선 배부터 채워보자. 경주는 참, 맛있다. 하하하.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육개장을 시켜보면 상어 고기가 찬으로 나온다. 허허허. 상어 고기라.
혹시 신라인들도 상어 고기를 먹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황남대총을 발굴할 때 어마어마한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부장품 중 대부분은 그릇이었다. 그런데 그릇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겨있던 음식물도 함께 나왔다. 아마도 사자(死者)가 내세에 다시 태어났을 때 배고프지 말라고 음식을 함께 넣은 것이리라. 그런데 그 음식물 중에 상어 고기가 있었다. 그 옛날 ‘황금의 나라’ 신라를 호령했던 왕 중의 왕 마립간이 먹었던 반찬. 상어 고기. 나도 마립간이 된 양 육개장과 상어 고기를 맛나게 먹고 음식점을 나선다.
헉. 이게 웬일. 입이 자동으로 떡 벌어지게 만드는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요즘 학생들 말대로 하면, “이거 실화냐?” 정도 되겠다. 역시 사람은 배부터 채워야 하나보다. 아까 배고플 땐 보이지 않던 모습이 배부르니 이제야 보인다. 조명 속에 푸른 초록빛을 담고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봉긋 솟아있는 누군가의 잠자리. 우와!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어떻게 찍어도, 누가 찍어도, 어떤 카메라로 찍어도 그냥 ‘세기의 작품(?)’이 나온다. 저 잠자리 안에 누군가 계시겠지. 1500년 전 금관을 쓰고, 하늘을 나는 백마가 그려진 말다래(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물건) 위쪽으로 비단벌레 날개에서 뿜어 나오는 무지갯빛 안장 위에 늠름하게 앉아있었을 그 누군가가 바로 저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무려 15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나, 그리고 그 누구. 우리는 말 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역사의 현장에 서면 이런 감동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조용히 발길을 옮겨 또 다른 경주의 밤을 만난다. 선덕여왕을 닮은 첨성대는 어찌나 고운가. 선명하게 까만 밤을 배경으로 다소곳하게 서서 보여주고 있는 저 곡선의 아름다움. 저 안에서 별을 바라보았을 1500년 전 신라인을 찾아본다. 신라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 역시 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찾는다. 그런데 그 신라인이 보라는 별이 나는 지금 잘 보이지 않는다. 저들에겐 쏟아지는 별이 보였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인공의 별빛만이 겨우 몇 개 보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신라의 밤이 꼭 종소리만 있지는 않았겠구나⋯. 내가 지금 보는 인공의 야경 대신 자연의 별빛이 있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시 월성을 지나 도착한 안압지(동궁과 월지). 아, 이게 웬일. 건물은 분명 하나인데 보이는 모습은 두 개다. 땅 위에 서 있는 건물 하나.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 있는 같은 건물 둘.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땅 위에 서 있는 건물은 흔들림이 없지만, 물속에 들어가 있는 건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결을 따라 움직인다. 멈추어 있을 정(停). 움직일 동(動). 이 멋진 변증법의 하모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멋진 곳이 바로 안압지다.
신라의 밤은 참 예쁘다. 비록 우리 시대의 기술이 쏘고 있는 인위적 조명 불빛이지만, 그 또한 1500년 전 경주 사람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칭송의 헌시일 것이다. 그 분들은 남기셨고, 우리는 그것을 밝히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현장. 그 속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