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이 만난 사람: 손옥주 환경부 국장
유네스코의 뿌리가 된 국제지적협력위원회에는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와 같은 당대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참여했을 정도로 과학 분야는 유네스코 업무의 큰 축이다. 2018년부터 유네스코 본부 사무국의 물 과학국(Division of Water Sciences)에 파견되어 한국의 국제과학협력에 기여하고 있는 손옥주 환경부 국장을 만나보았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물 과학국이라는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시급한 분야가 깨끗한 물 공급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네스코가 과학분야에서 일찍부터 중점을 둔 분야 중 하나가 물 과학이었습니다. 이에 전 세계 물 문제 해결을 위해 1975년 시작한 국제 수문학 프로그램(Intergovernmental Hydrological Programme, IHP)은 현재 8단계 사업(2014-2021)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제 수문학 프로그램은 유엔에서 유일하게 물을 주제로 한 정부간 사업으로, 현재는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홍수, 가뭄, 깨끗한 물 공급, 수질 환경 등 물 관련 연구와 교육을 통해 전 세계 학계 및 정책결정부서와의 교류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환경부에서 유네스코 신탁기금사업인 물 안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수자원공사와 함께 유네스코 수돗물 인증사업을 기획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사업처럼 서울, 파리 등 주요도시의 수돗물의 품질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것입니다.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줄여 믿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회용 생수 플라스틱 소비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 인증을 받고자 하는 도시는 우선 관련 사업에서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것이 필수 전제조건이라, 자연스럽게 멘토-멘티 관계를 형성하여 선진기술과 경험이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글로벌 플랫폼도 만들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2022년 정식 출범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탁기금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현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유네스코를 통한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원은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 지원은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생각보다 간단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소녀 교육은 학교만 지원해준다고 해결이 어렵습니다. 두세 시간을 걸어 물을 길어 와야 하고, 가족을 위한 생계를 맡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딸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 안보 사업은 이러한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내부에서 평가가 아주 좋습니다. 외교부, 환경부, 교육부 등 관련부처가 협업을 강화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무 3년차를 지나 이제 귀국까지 2년이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2년에 대한 계획이 어떠한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항상 낮은 곳에 머물며 만물을 이롭게 하니, 이 세상의 으뜸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이 오래된 동양 철학이 인류의 평화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유네스코가 과학분야에서 물을 중히 다루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에는 먼저 지난 2년간 추진해 온 유네스코 수돗물 인증사업이 정식 출범할 수 있도록 기틀을 잘 닦고 싶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전 회원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담은 사업이라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개발도상국 지원사업도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가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남북협력의 평화적인 상징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변수가 있겠지만, 이것이 성사된다면 유엔의 제재가 유엔의 지원으로 전환되는 획기적 분수령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끝으로 특별한 올해에 대한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유네스코 가입 70년을 맞은 한국에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으신지요?
유엔에서 지원받던 국가가 반 세기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이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국가로 바뀐 것은 전무후무한 전설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남북 평화의 진전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높은 기대감과 가능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행운의 숫자가 들어 있는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 평화의 기운을 받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는 상징적인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이제 한반도의 기적을 기대합니다.
| 손옥주 국장은 기술고시 31회로 공직을 시작한 후 미래전략담당관, 수자원정책과장, 운영지원과장을 거쳐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지역활력국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농업토목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 토목환경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여가 시간에 등산과 당구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