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지금의 시스템은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은 우리의 입시 제도, 나아가 교육 제도의 개선을 논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위를 향해 뻗어있는 사다리 앞에서 한가롭게 ‘경쟁과 배제 대신 협력과 연대’를 주장할 수 있는 여유는 여태껏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유네스코는 21세기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모든 주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과거와 현재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 시험과 관련한 ‘11월(혹은 12월)의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이는 별로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지는 벌써 30년이 됐고, 그 이전 세대들도 ‘학력고사’ 또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시험일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한파 속에서 긴장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모를 떨림과 함께 시험지를 받아들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에게 이 시험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성공과 실패의 극명한 갈림길이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원하는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십대 시절의 거의 전부를 책상 앞에서 보내며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모든 일들을 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반면에 여기서 실수라도 한다면? 일 년 더 ‘이 짓’을 반복하고 내년에 다시 시험을 보거나, 내가 원치 않았던 곳에서 20대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극명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오직 수험생만이 아니다. 친구들과의 모든 인간관계나 여행,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인 배려를 얻을 수 있는 ‘고3엄마(혹은 아빠)’라는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시험은 집안 전체의 시험이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시험이기도 하다.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는 전국 공항에서 비행기 출도착이 잠깐 멈추고, 이 날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도 늦춰지며, 주요 관공서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까지 한 시간 늦게 문을 연다.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연례행사는 외신들에도 종종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된다. 『BBC』는 2018년 ‘수능, 한국이 침묵에 빠지는 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능을 “학생이 입학할 대학을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직장, 소득, 나아가 주거지와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험”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신뢰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일엔 원인과 배경이 있다. 수험생과 가족이 목숨을 걸듯 매달리고, 사회 전체가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 가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의 합의와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교육열이야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현상이지만 고부담 시험1에 대한 이와 같은 광범위한 자원 투입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의 일부로서의 평가 수준을 넘어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시험의 위상과 부담이 높은 국가들의 이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유네스코 방콕사무소는 『시험문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배움의 사회문화적 영향에 관하여(The Culture of Testing: Sociocultural Impacts on Learning in Asia and the Pacific)』라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설문과 심층면담을 통해 이 연구에 참여했고 그 결과를 『유네스코 참여연구: 한국의 시험문화와 학습자에 대한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펴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시험의 필요성, 혹은 중요성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믿음은 확고하다. 설문 응답 학생의 82%와 학부모의 83.9%가 학습의 일부로서 시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일반적인 시험의 목적에 대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 대부분은 “배운 것을 점검하고 스스로의 수준과 위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데 있다”고 이해했다. 이와 달리 수능과 같은 고부담 시험의 목적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가 ‘배운 것을 평가하기 위해’(56.8%), ‘상위 교육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54.9%),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31%)의 순으로 답했지만, 세부적으로는 학생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고부담 시험을 상위 교육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실용적 도구로 보는 시각이 높아졌고(초6 45.6%, 중3 60.8%, 고2 65.8%), 그와 반비례해 ‘배운 것에 대한 평가’라는 응답은 낮아졌다. 전체적으로 응답자들은 학업의 성실성과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시험이 필요하며, 시험은 변별력과 공정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학업수준을 평가하고 인재를 선발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의 의미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시험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전체 학생의 69.1%가 “시험과 학업성취에 대한 기대가 학습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응답했고 “시험 덕분에 더 많이 배운다고 느낀다”는 문항에 대한 5점 리커트 척도(매우 그렇다 5점, 보통이다 3점, 전혀 그렇지 않다 0점) 평균은 2.81점에 그쳤다. 시험은 학생들의 행복과 정서적 측면에도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학업 성취도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대한 고2 학생들의 응답은 2.58로 전체 학생 평균(3.17)에 비해 훨씬 낮았으며, 시험의 부작용으로 경쟁심과 이기심 등의 심화, 신경질적이고 과격한 성향 표출 등을 꼽은 교사와 학부모도 있었다. 특히 심층면담을 통해 생각을 밝힌 한 교사의 다음 말은 고부담 시험에 대한 교육 구성원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만점을 받는 10% 외에는 전부 불행해요. 그리고 만점 받은 애들도 행복하진 않아요. 나만 받아야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결국 나만의 백점을 지향해요.”
모든 한국인에게 익숙한 수능 시험일의 풍경. 수험생과 가족, 나아가 전 사회가 숨을 죽이게 되는 이 고부담 시험의 교육적 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은 지금 꼭 필요한 일이다
(KIM JIHYUN / Shutterstock.com)
모든 개혁이 ‘찻잔 속 태풍’일 수밖에 없는 이유
막중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결국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여기 뛰어들지 않을 수는 없는 상태.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교육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적 신분 상승과 지위를 결정짓는 선발의 수단으로서 교육에 매달리는 상태. 고부담 시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러한 막중한 부담과 굳건한 믿음은 전체 교육 제도의 변경이나 개선을 더욱 쉽지 않은 일로 만들고 있다. 사실 교육 당국은 학생과 주변 모든 관계자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부담과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마다 제도 개선을 시도해 왔다. 수능 기출 내용을 EBS 교재와 연계하고,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화하고, 선택과목을 신설하거나 출제 범위를 줄이는 등 수능 시스템 자체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 초-중등학교 과정에서도 시험을 아예 폐지하거나 수행평가 제도,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며 과도한 경쟁과 학습 부담을 줄여 보고자 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3년 지금 이 순간 한국의 학생 대다수는 수능이라는 궁극적인 시험이 주는 부담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며, 따라서 배움의 참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나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는 “사실상 이 고부담 시험이 모든 교육의 단계와 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앞선 단계에서) 강력한 개선이 일어나도 이는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진학과 진로를 결정짓는 시험일이 점점 가까워지는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학생과 학부모는 입시에 필요없는 교과목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시험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심과 개입이 확대되며, 교사는 시험문제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대안적 평가방법을 시도할 동기와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결국 ‘모두에게 시험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이를 통해 얻은 점수를 그 학생의 능력으로 단정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공정한 방법’이라는 믿음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교육 개혁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해당 보고서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수능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나오는 ‘차라리 학력고사가 낫다’는 주장에도, 입학사정관제 등 시험 점수 의존에서 벗어나 학생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입시에 도입하겠다는 말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시험점수가 오히려 믿을 만하다’는 반박에도,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도구로서 오로지 시험만이 유일하고 공정한 방법인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은 담겨 있지 않다. 나아가 점수, 즉 개인의 능력을 가장 수월한 방법으로 환산한 숫자로만 학습자를 구분짓고 그들에게 교육 기회를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것 자체가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지 않다.
한 산악인들이 팀을 이뤄 유럽 최고봉 몽블랑 산을 오르고 있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모두 함께’가 교육의 목표임을 느낄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한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우리 안의 협력과 연대의 정신도 더욱 자연스레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Shutterstock.com)
공존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기 위해
2021년 『경향신문』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공동으로 기획한 특집 기사에서 “‘공정’하게 ‘시험’을 치렀다고 믿는 이상 능력주의는 의심할 여지 없는 불멸의 명제가 된다”면서, 우리 사회가 “불평등으로 인해 능력에 차이가 생긴다는 점을 도외시하고, 능력의 차이에 근거해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해당 기사는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라는 미국의 대학 미식축구 감독 베리 스위처(Barry Switzer)의 말을 인용하면서 애초에 출발점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에서 드러나는 차이란 결코 공정할 수도, 객관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교육을 바라본다면 최근 ‘킬러문항’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역시 학생들을 줄 세워 걸러내는 데만 집중하는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사교육을 받고 ‘3루에서 태어난 학생’만 풀 수 있는 킬러문항을 없앤다 하더라도 2루와 1루에서 태어난 학생, 볼넷을 얻은 학생, 처음부터 투 스트라이크를 안고 태어난 학생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치르는 단 한 번의 시험이 그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미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2016년 『에듀인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고부담 시험의 무게가 교육 전반을 억누르고 있는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평가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맹신하는 관점이 문화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개개인의 맥락을 중시하는 ‘주관적’ 평가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면서 “시험의 결과가 전체를 보여줄 수 없는데도 전체를 본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도 지난 2017년의 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시험문화의 초점을 기존의 신뢰성에서 타당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시험이 학생의 능력을 계량화하고 서열화하는 기존의 양적 평가 체제 대신 “다양한 학습자의 잠재력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성장을 촉진하도록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데 있어 변별력과 공정성, 객관성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생략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우리 교육이 여전히 ‘자원 혹은 기회의 효과적인 배분 수단’으로만 활용된다면, 이는 교육이 내재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 아닐까. 2021년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펴내고 지난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글판으로 발간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교육의 미래 보고서)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지구와 인류의 경로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급한 행동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교육이 “학생, 교사, 지식,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협력, 협동, 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조직”된 교육학을 통해 “함께 공부하며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적·사회적·도덕적 역량을 함양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배우는 방식은 우리가 무엇을, 왜 배우는지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는 보고서의 문구를 생각해 본다면, 그저 번영과 성공이 아니라 회복과 공존을 위해 다시 배워야만 하는 우리가 고부담 시험을 그 정점에 두고있는 교육의 변혁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는 친구들과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표였던 ‘혹독했던 그 겨울의 추억’을 더는 갖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