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유네스코 토크를 돌아보며
오해는 마음속에서 생기고, 소통이 없을 때 크고 깊어진다. 숨 가쁜 속도로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는 이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우리 미래를 밝혀줄 상호 이해와 연대를 위해서는 지적이고 열린 대화가 절실하다고 보고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유네스코 토크’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17일, 제3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세 차례의 유네스코 토크가 마무리됐다. 유네스코 토크는 크고 작은 사회 이슈에 대한 시민의 정확하고 충분한 이해를 돕고 ‘우리 안’에 있는 오해와 편견을 줄여 상호 이해와 연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의 차별과 소외를 좀더 깊이 이야기해 본다는 방향을 정하고 교육, 문화,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각각 ‘놀이’와 ‘이주민’, ‘인공지능 윤리’를 주제로 토크를 진행했다. 단순한 대담 행사가 아닌,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각 행사 전에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해당 주제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과 고민을 토크 대담 내용에도 반영했다.
하나, 아이들의 놀이 뒤집어 보기
유네스코 토크의 첫 출발인 제1회 토크는 ‘놀이 뒤집어 보기’를 주제로 10월 19일 서울 명동의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렸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을 특정해 “모든 아동이 휴식, 여가를 누리고 놀이와 오락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과 시간을 보장”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바쁜 일정을 어릴 적부터 소화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 그래서인지 첫 번째 토크에 대한 양육가와 교사의 관심이 뜨거웠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대담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약 두 시간에 걸쳐 놀이의 정의와 놀이의 힘, 그리고 아이들이 잘 노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 놀이꾼’으로서 그간 쌓아온 지식과 현장 경험을 털어 놓았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송성남 서울지부장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도전하고 또 도전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학교 놀이터 등 공공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놀이 문화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연구교수는 놀이의 가장 중요한 본령을 ‘자유’라고 규정하고, “심심할 틈이 생겨야 아이들의 놀이도 생기는 것”이라며 부모와 사회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틈을 좀더 적극적으로 마련해 줄 것을 제안했다. 편해문 자유놀이 옹호가는 “과거와 달리, 어른은 점점 많아지는 데 반해 어린이의 수는 적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른은 어린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 조연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둘, 이 땅에 사는 ‘우리’ 다시 그려보기
‘이주민과 다시 그려보는 ‘우리’’를 주제로 한 제2회 토크는 11월 9일 서울 명동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진행됐다. 1회 때와 마찬가지로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 한건수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대담자로 나섰다. 이주민은 누구이고, 우리는 이주민을 어떻게 호명하며,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짚어본 2시간 동안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에 숨어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시기에 마스크나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이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 사례, 그리고 건강보험 의무가입 대상으로서 꼬박꼬박 부담금을 내고 있음에도 ‘무임승차자’라는 비난받는 이주민들의 현실을 소개했다. 이완 공동대표는 “우리가 문화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윤리적 측면에서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문화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문화 다양성의 도덕적 가치와 사회 전체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실질적 이점을 함께 언급했다. 더불어 세계 유명 기업 임직원의 인종 및 성별 다양성과 매출 간의 상관관계, 도시의 다양성과 관련한 ‘3T 이론’ 등을 소개하며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 다양성을 조명했다. 한건수 교수는 이주민을 호명하는 용어 속에 깃든 차별적 인식에 대해 짚으면서도 우리 각자의 인식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일부 용어에 차별적인 인식이 담겨 있어 대안적 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용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갖고 부르는지이고, 우리 마음속의 차별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 이주민을 호명하더라도 문제는 되풀이될 것”임을 지적했다.
셋, 따뜻하고 포용적인 인공지능을 기다리며
11월 17일, 장소를 대전 카이스트 KI 빌딩으로 옮긴 제3회 유네스코 토크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인공지능(AI)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열렸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다양성과 포용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향후 대응 과제와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대담자로 참여한 김대원 카카오 인권과 기술 윤리팀장과 류석영 카이스트 AI 연구원장,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의 인간 대체 가능성 ▲인공지능과 표현의 자유 ▲인공지능의 건강한 발전과 이용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인공지능과 소외계층 등 인공지능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대해 법 제도와 교육, 산업 등의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류석영 원장은 인공지능이 윤리적인 데이터 학습을 수행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발맞춰 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먼저 혐오와 차별적 행동을 경계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원 팀장은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은 이미 2010년대부터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에 자체적인 윤리적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의 비용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노력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인 지침 및 기준 마련을 너무 서두르는 것을 경계한 이상욱 교수는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에 이르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가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윤리 지침이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규범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자 활동하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대담자들은 인공지능 관련 이슈가 더는 산업 분야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며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공지능의 사회적·윤리적 함의를 성찰하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넷, 2023년, 다시 봄
유네스코 토크를 기획하면서 우리가 무엇보다 ‘못살게 굴고자 했던’ 대상은 바로 우리 안의 편견과 오해였다. 그러한 편견과 오해를 쫓아낼 우리의 ‘백신’은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였고, 그 속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생각의 틈을 넓혀 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 뒤늦게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해당 토크 현장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 만날 수 있고, ‘토크 시리즈’(1-3호)를 통해 활자로도 읽어볼 수 있다. 2023년에도, 우리 안의 편견과 오해를 집요하게 쫓아다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유네스코 토크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이신영, 이의진 특별사업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