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반드시 태풍의 발생 빈도나 강도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복잡한 되먹임 고리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대기 시스템, 해양 시스템, 기후 시스템 등에 영향을 주어 전반적으로 규모가 큰 허리케인처럼 극단적인 자연 재해의 발생 확률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기후변화와 관련된 윤리적 논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결과물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대처 방안과 국제 공조의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윤리적 쟁점을 크게 ‘실존적 위험’과 ‘실천적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실존적 위험이란 전 지구적으로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발생하고 있는 기후변화가 종으로서의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에 해당된다. 이는 기후변화가 태풍이나 해일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명을 앗아간다는 의미보다는,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복잡계 시스템의 매우 정교한 균형 상태가 기후변화 때문에 깨지면서 지구가 인류가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변화로 인류 전체가 멸종 위기에 처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1)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이번 기후변화 역시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실존적 위험은 엄연하게 상존하는 위험이며 이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 역시 무겁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지만 실존적 위험에 대한 윤리적 논의는 종종 기후변화에 누가 얼마만큼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소재 밝히기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생산적이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에 구미 국가를 비롯하여 산업화를 보다 빨리 시작한 경제 선진국들이 압도적으로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맹목적 이윤추구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산업화 후발주자나 저개발국에게 ‘발전할 권리’를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다. 그러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의 ‘기계적 균형’은 맞출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후변화 속도가 더욱 증가하여 파국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존적 위험에 대한 윤리적 논의는 누가 더 큰 책임을 가졌는지보다는 저개발국가의 삶의 질 향상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과 이 국가들이 이런 방안을 실천할 수 있도록 경제선진국들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효율적일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2)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논의를 실존적 위험의 거대 담론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실천적 문제로 옮겨 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실존적 위험에 비해 실천적 문제에 대한 윤리적 쟁점은 합의 도출도 쉽지 않고 실행도 어렵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반 시민이 자신에게 익숙한 에너지 소비 방식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전기세를 비롯한 에너지 비용을 올려 소비를 줄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적어도 단기간에 온실 기체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핵발전이 고려되고 있다. 물론 핵발전은 분명한 단점을 가진 기술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핵발전의 부산물인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생생하게 경험했듯이 핵발전 관련 사고의 위험은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다.
이 모든 명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에서 핵발전의 역할이 거론되는 이유는 현재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현실적인 대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친환경 에너지는 분명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 방안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보급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이는 합의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딜레마다. 핵발전이나 기후변화 모두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극단적 위험과 관련되기에, 어느 한 위험이 다른 위험보다 더 낫다는 판단을 객관적으로 합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각국마다 자국의 정치문화적 고려와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 사회적 협의를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협의를 위한 노력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기후변화 대처에 도움을 줄 과학기술을 기술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에서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의 문제도 논쟁적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서 인류 전체의 공동체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선진국조차 자신들이 상당한 연구개발 비용을 지불하여 얻어낸 과학기술을 무상으로 저개발국에 제공한다는 생각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 역시 지구적 생존과 관련된 공동체적 가치와 주권 국가 중심의 정치적 가치가 어떻게 조화해 나갈 것인지를 국제적 협의를 통해 풀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와 관련된 윤리적 논의는 구체적 수준에서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 유네스코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1) 이 사실은 현재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과거에 멸종 위기로 인한 병목 현상을 겪었음을 방증할 정도로 낮다는 사실로부터 추론 가능하다.
2) 이런 이유로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은 기후변화 맥락에서도 중요하다. 관련 논의는 Sachs, Jeffrey D. 2015, The Age of Sustainable Developmen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참조.
이상욱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위원, 한양대 철학과 교수, 미래인문학융합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