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장
전 세계가 코로나19가 야기한 피해 회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유네스코는 그 과정에서 교육에 대한 지원이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평소 여러 경로를 통해 교육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반상진 원장을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육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래 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을 이끌며 평소 교육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강조해 오신 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미래 교육의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환경위기, 건강위기, 경제위기 등 이른바 ‘혼합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한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분야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교육양극화 해소입니다. 교육계는 학습자 교육접근성 확보 및 교육지속성 보장, 비대면 방식의 교육 제공 및 교류·협력을 위한 첨단기술의 활용 등을 기반으로 교육양극화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하며, 나아가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해야 합니다. 적자생존 방식의 경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포용 교육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존의 교육적 가치와 질서, 교육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전환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인간의 존재 가치 회복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에 첨단 과학을 적용하는 것 만큼이나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학습자에게 일깨우는 인문교양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교양교육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복잡한 세계적 문제를 탐색하고 미래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보다 품위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상황으로 국가 간, 계층 간 교육 격차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포용적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 국내 교육계가 해야 할 일,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위협하는 변화가 범람하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교육 본연의 가치와 목적을 상기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문교양교육에 주의를 환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올해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기관의 주요 과제로 ‘글로벌 인문교양교육 모델 구축 기초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활용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용적 인문교양교육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비록 그 과정이 상당히 어렵고 그 성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인문교양교육의 유용성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교육계는 물론, 국제사회도 인간 본연의 가치와 잠재력 발현을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코로나19 피해 회복에 매진하고 있는 회원국들에 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피해 보전과 경기 부양이 급박한 상황에서, ‘거시적 과제’로 여겨질 수 있는 교육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에서 논의를 펼쳐 나가는 것이 중요할까요?
오늘 주시는 질문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선 긴급한 회복, 특히 ‘먹고 사는 것’에 관련된 지원이 시급하다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소위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나라가 집중했던 과제가 바로 교육이었고, 바로 그 점이 오늘날의 발전된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긴 안목으로 지속 가능한 삶과 웰빙을 생각하고자 한다면, 시급한 현안 해결과 더불어 반드시 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려야만 합니다.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지식 2배 증가 곡선’에 따르면 인류의 지식 총량이 2배로 증가하는 데 1900년까지는 100년이 걸렸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25년이 걸렸고, 지금은 대략 1년이 걸리며 약 20년 후면 불과 하루이틀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와 정의에 대한 판단 기준을 잡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무용한 일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살게 해 줄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지난 3년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분과위원장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국제사회 및 국내 교육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2011년부터 ‘세계인문학포럼’을 통해 세계 석학 및 사상가들을 초청하여 오늘날 당면한 시대적인 과제들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성찰하는 담론의 장을 마련해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글로벌 담론 형성의 선도적 역할이야말로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더불어 환경, 보건, 민족, 세대, 젠더, 문화 등 삶의 전반적 측면에서 다양한 갈등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실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들이 서로의 생각과 지혜를 모아 실제적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유네스코가 담당해야 할 소중하고 가치 있는 소명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