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육에는 변화가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얼마나, 어느 정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일까? 유네스코가 지난해 발간한 ‘교육의 미래 보고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제시하는 유용한 안내서다. 지난 9월 유엔 교육정상회의에서 유네스코는 방대한 보고서의 논점 중에서 ‘연결’과 ‘녹색’, ‘포용’의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국 관계자들에게 교육 변혁을 위한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교육은 위기일까
지금 우리의 교육은 위기에 빠져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의를 표하지만,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달라 보인다. 그 전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교육의 위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누군가는 교육의 위기라는 말을 듣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다른 이는 최근 여러 뉴스를 통해 드러난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 사례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교육 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것이다. 신입생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지방대학의 현황,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면서도 정작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학자금 대출의 빚더미 속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 그리고 직업에서 요구하는 바가 달라졌지만 재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뒤처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육의 위기를 체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각을 전 세계로 돌리면 또 다른 교육의 불편한 현실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기초적인 문해력과 수리력을 익히지 못한 아동과 청소년은 2억 4400만 명에 이른다. 열 살이 되도록 간단한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전 세계 해당 연령대의 64.3%에 달하며, 이대로라면 향후 8억 4천만 명의 젊은이들이 미래 직업을 위한 적정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와 유니세프, 세계은행, OECD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여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의 교육 결손 만회 대책을 세운 국가는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며, 4분의 1은 학업을 중단한 아이들 중 어느 정도가 학교로 돌아왔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은 이들이 잃어버린 교육 기회를 만회하지 못한 채 방치된다면 남은 일생 동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의 총합이 1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이유
이 모든 교육의 서로 다른 현실들을 감안할 때, 여기에 위기라는 단어를 붙여야 할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따지기에 앞서 지금 전 세계의 교육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30년까지 교육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전 세계의 약속은 이미 팬데믹 이전에도 만족스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고, 이제는 각국의 교육 예산이 팬데믹 피해 복구 과정에서 삭감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도록 특별한 당부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더 근본적으로는 20세기 인류의 눈부신 성장과 번영을 뒷받침해 온 교육 시스템이 앞으로 ‘성장’뿐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교육이 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진 열망에 계속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바꾸어야 할 때’라는 유네스코와 여러 전문가들의 호소에 더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교육의 변혁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한편, 각국에서 교육 변혁이 주요 정치 의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보고 지난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유엔과 함께 교육정상회의(Transforming Education Summit)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전 세계 130개국의 주요 인사들은 우선 코로나19 학습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행동을 촉구하면서, 지속가능발전의 바탕이 되어야 할 보다 포용적이며 공평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전 지구적 노력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닷새간의 회의기간 내내 주요 의제에 대한 각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이니셔티브와 파트너십을 구성하고 행동 촉구 선언문을 이끌어 낸 유네스코는 ‘연결된(Connected), 녹색의(Green), 포용적인(Inclusive) 교육’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 변혁 의제들을 각국 인사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공공의 디지털 교육을 확장하고 ▲기후 및 환경 위기에 앞장서 대응하고 ▲(팬데믹으로 인해 학습 손실을 입은 이들을 포함해) 모든 뒤처진 사람들의 교육 접근성을 향상함으로써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류라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든든한 바람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빠짐없이 연결하는 디지털 학습
유네스코는 우선 21세기의 디지털 혁명이 교육에서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모든 학습자와 교육 제공자들과 학습 도구를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연결성(connectivity)은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현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 중 하나이지만 아직은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연결시켜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인프라와 시스템이 구축된 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이는 차차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러한 기대가 저절로 충족되지는 않을 것임이 분명해졌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격교육이 급속히 확산된 와중에도 아직까지 전 세계 전체 학령기 어린이의 3분의 1가량에 해당하는 4억 6300만 명은 원격교육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유네스코는 교육정상회의에서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공공 디지털 학습’(Public Digital Learning)에 관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모든 학습자들의 연결성을 향상시키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공공 디지털 학습 이니셔티브는 이미 출시된 공공 플랫폼과 그 내용을 분석·파악해 각국이 국가별 플랫폼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모범 사례를 공유하면서 플랫폼 개발에 관한 국제 규범과 표준을 만드는 일도 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교육에서의 디지털 기술이 그저 학교 수업의 보충 도구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재로서의 교육’을 달성할 주요 동력 중 하나로 여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디지털 학습이 소득이나 환경 혹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대신, 모든 학습자와 교사와 가족이 교과 과정과 잘 맞는 양질의 디지털 학습 자료를 쉽게 찾고 자유롭게 쓰면서 학습 역량을 높이도록 도와야 한다는 데 대한 전 세계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예정이다.
교육에서 시작하는 기후위기 대응
최근 유네스코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0여 개국 중 절반에 달하는 국가가 자국의 교육과정에 기후변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학교 밖에서 접하는 이 세상의 모습이 단절돼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기후변화는 이미 모든 사람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훗날 기후변화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볼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미적거림에 갈수록 분노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은) 우리 목숨을 건 싸움”이라 말했듯,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에게는 기후변화 대응을 미루고 주저할 여유가 없다.
환경 및 교육 전문가들은 환경에 대한 인식과 책임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학습이 이제는 교육 과정을 ‘그럴듯하게 채워주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모든 학습자가 기후변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지식과 기술, 인식을 갖도록 더 강력하고 잘 조직되고 종합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교육정상회의에서 유네스코는 이를 위한 정책 마련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각 회원국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및 유엔환경계획(UNEP)과 협력해 ‘녹색 교육 파트너십’(Greening Education Partnership)을 구성했다. 유네스코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의 기반 위에 꾸려진 녹색 교육 파트너십은 평생교육 및 전학교적 접근을 통해 각 회원국이 학교 현장과 수업, 교사 및 지역사회의 네 영역을 아우르는 환경교육 활동을 펼칠 것을 요청한다. 이와 더불어 ▲커리큘럼에 기후행동 관련 교육을 포함하고 ▲교사들이 해당 영역의 교육을 이수하고 ▲성인학습자들 대상 기후변화 관련 교육을 마련하고 ▲녹색 학교 인증제도를 마련하는 것 등을 파트너십의 목표로 명시했다.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바람 같은 교육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디지털 혁명의 혜택을 통해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을 기르는 교육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유네스코는 멈춰선 교육을 다시 움직이게 할 또 하나의 바람으로 다름 아닌 포용을 꼽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유네스코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육 관계자들과 국제기구가 강조해 온 이 말은 21세기를 넘어 교육의 변혁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우선순위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교육을 달성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뜻인 동시에, 보편적인 교육이 진전을 이루어 나가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남아있거나 새로 생겨나는 차별과 배제를 지속해서 파악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꾸준히 나아지고는 있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대표적인 교육 과제 중 하나가 교육에서의 성평등 달성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소녀는 1억 1850만 명이며, 기초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성인 7억 7100만 명 중 3분의 2가 여성이다. 팬데믹이나 무력 분쟁, 난민 및 이주민 문제, 기후 관련 재난, 그리고 점점 증가하는 성평등과 여권 강화에 대한 반동(backlash) 앞에서 가장 쉽게 과거로 되돌려지는 것 또한 성평등이다. 성차별과 더불어 재난이나 분쟁 상황 역시 앞으로도 교육을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붕괴시키고 또다른 배제와 차별을 낳을 요소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여 간의 팬데믹 상황과 별개로, 지금도 2억 2200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무력 분쟁과 강제 이주 및 기후 관련 재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학습에 지장을 겪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 세계 85개 국가에서 9천여 명의 학생과 교육자들이 납치, 부상 혹은 죽임을 당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학교가 군사 작전에 활용되거나 교육 장소가 공격받는 일도 5천여 건 발생했다.
유네스코는 이번 교육정상회의에서 ‘교육에서, 그리고 교육을 통한 성평등 진전에 대한 행동 요청’과 ‘위기 상황에서의 교육을 위한 행동 요청’을 이끌어내면서 교육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거나 박탈당해서는 안 될 기본권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더불어 포용적인 교육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소득 중하위 및 하위 수준 국가들이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4)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교육 지원책 마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포용은 정책과 이념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러한 포용을 교육에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자금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교육 관련 각종 지표가 후퇴하고 있는 국가들이 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유네스코를 비롯한 유엔 각 회원국은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회의 마지막 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과 고든 브라운 유엔 교육분야 특사는 2023년부터 이들 국가의 교육 지원을 위해 20억 달러를 지원하고 향후 추가로 100억 달러 이상을 교육 및 기술 향상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육을 위한 국제자금조달기관’(International Financing Facility for Education, IFFEd) 설립을 발표했다.
연결, 녹색, 포용의 세 키워드가 유네스코가 제안하는 교육 변혁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교육이 지금 교육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인류가 함께 공정하고 표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 세 분야에서의 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2030년까지 남은 7년여가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될 인류의 지속가능한 여정을 위해, 유네스코는 우선 각국이 이 세 영역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