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수험생 중 정답을 맞힌 비율은 18.3%. 물리법칙인 만유인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를 국어 문제로 시험했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였다. ‘역대급 불수능’을 만든 주역으로 31번 문항에 대한 비난이 일었지만, 한편에서는 (난이도 문제를 차치하고) 이런 식의 융합을 시도하는 문제가 앞으로의 방향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기술이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 새롭게 접목될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이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야와 분야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일, 서로 다른 주제와 주제를 만나게 하는 일은 사실 지구촌이 겪고 있는 글로벌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빈곤, 인구증가, 환경의 파괴, 기후변화, 극단적 폭력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어느 한 주체나 어느 한 분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각기 복잡한 원인과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들의 상호작용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분야를 뛰어넘는 협력
교육과 과학과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은 지구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채널이다. 과학은 근거를 제공하고, 교육은 이해를 높이고,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을 돕는다. 이 네 가지 분야의 임무를 부여받은 유네스코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카드를 조합해서 쓸 수 있다. 여성, 아프리카, 청년, 군소 도서국가, 토착민 등 유네스코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에 맞는 정책을 펴고, 인권을 지키고 평화의 문화를 만들고 기후변화에 맞서는 등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을 이루는 데는 가능한 여러 주체 들이 힘을 모을수록 시너지가 커진다.
‘평화의 문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유네스코는 교과서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교사들의 교육 지침서를 발간하고, 문화 간 소통을 위한 과학의 역할을 연구하고, 디지털도서관에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청소년들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송을 제작하도록 돕고, 또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장려한다. 유네스코가 집중하는 주제 중 하나인 기후 변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발도상국가에 지원하는 직업교육에 녹색기술을 접목하고, 언론인들에게 기후변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문화유산을 지키는 정책을 개발한다.
이처럼 분야 구분 없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양한 영역이 동원되고, 교육과 과학과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주제들이 서로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것도 유네스코이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다. 유네스코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이 협력해 디지털 교육 자료를 지구촌이 함께 공유하자는 ‘교육자원공개’(Open Educational Resources, OER) 운동을 벌이고 있고, 생명과학, 과학기술, 기후변화를 거쳐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과학과 윤리 관련 이슈에서 자연과학과 사회 과학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네스코 안에서 가장 큰 화두인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 사회과학적 영향, 문화적 창의성과의 관계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경계 넘어 미래로
유네스코가 교육, 과학, 문화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각 분야를 뛰어넘는 장점을 살려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원국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분야 간 협력에 더 신경 쓰고, 부서 간 대화를 더 잘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한때 유네스코는 사업 예산의 8%에 달하는 금액을 부문 간 협력 활동에 별도로 투입하기도 했지만, 빠듯한 재정상황 때문에 그 명맥이 끊겼다. 현재와 같이 분야별로 구분되어 사업 계획을 짜고 예산이 나뉘는 상황에서 경계를 허문 활동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직원의 부서 간 이동과 정보 소통을 위한 시스템이 빈약한 것도 장애가 된다.
유네스코는 지금 ‘전략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협심과 협업을 위한 환경 마련이 유네스코 개혁의 중요한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의 경쟁력은 융합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역량에 있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미래의 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파견하며, 외교업무수행, 유네스코와 대표부와 한국위원회간의 연락, 유네스코 활동의 조사, 연구, 정책개발 등을 담당한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