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고려한 선택’을 하고자 하는 소비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를 잘 아는 기업들은 자사의 상품과 브랜드에 녹색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ESG를 내세우며 그러한 노력이 제품 판매뿐만아니라 투자로까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인류가 지금의 환경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지 소비자와 투자자들의 선택뿐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지구를 위한 선택이 이루어져야만 하며, 이를 위해 ESD(지속가능발전교육)를 더욱 내실 있게 만들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의 녹색 물결
오늘날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더는 유별난 활동가들만의 일이 아니다. ‘다음번 내 차는 전기차로 살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선택의 이유 중에는 환경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들어가 있으며, 비육 및 가공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 육식 대신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그 이유를 ‘내 몸뿐만 아니라 지구를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자사의 상품 선택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22년 말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애플은 지난해 발간한 환경경과보고서에서 자사가 “2020년 이후 100%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탄소 중립을 달성했다”고 강조하면서 2030년까지 제품 생산의 전 과정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세계 최대 패션 기업 중 하나인 인디텍스도 “2023년까지 폐기물 제로 달성, 2025년까지 재활용 폴리에스터 100% 달성, 2040년까지 기후 중립 달성” 등을 내세우면서 브랜드의 신제품 라인업에서 친환경을 강조하는 제품의 비중을 갈수록 높여가는 중이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 같은 일류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수출 비중이 크지 않은 내수 기업들도 저마다 환경에 대한 자사의 노력을 강조한다. 특히 어릴때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자랐고, 적은 지출일지라도 명분과 개념을 중시하는 MZ세대를 겨냥한 기업들의 광고 카피는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모 식품 기업은 최근 광고에서 대체육과 식물성 재료를 사용한 간편식 브랜드에 ‘지구식단’이란 이름을 붙이고 젊은층이 자사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곧 ‘지구식단 캠페인’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의 노력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에 더 많은 기업의 동참을 유도하는 것만큼이나 이들의 활동이 실질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탄소 중립을 달성했다는 것, 즉 ‘배출한 온실가스의 총합이 흡수한 온실가스 총합과 같다’는 말은 냉정하게 볼 때 해당 기업이 정말 친환경적인 활동을 펼치는지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기업은 자사가 배출하는 탄소량만큼 탄소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고, 그렇게 구입한 탄소 배출권의 총량이 배출하는 양과 같기만 하면 ‘탄소 중립’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소 중립 달성을 자랑하는 기업이 그저 탄소 배출권 구입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실질적인 탄소 배출 저감 노력을 기울였는지, 또한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은 실제로 지구의 탄소를 흡수하는 효과적인 체계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친환경적 소비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직접 챙겨야 할 부분이다.
녹색 선택의 이면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기업들의 홍보문구, 혹은 야심찬 계획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결과와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패션 저널리스트 올리비아 핀녹(Olivia Pinnock)이 지난해 유네스코 『꾸리에』에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패션계에 불어닥친 ‘오가닉’, ‘비건’, ‘재활용’ 같은 문구의 엄청난 유행에 비하면 패션업계가 실제로 달성한 결과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막대한 양의 물과 화학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지구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알려졌으며, 종종 저개발국의 노동력 착취와 관련한 비판을 받아 온 글로벌 패션 업체들은 수 년 전부터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그러한 오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해 왔다. 패션업계가 마련한 지속가능성 관련 포럼인 ‘글로벌 패션 어젠다’(Global Fashion Agenda)가 컨설팅 업체 맥킨지(McKinsey)와 함께 2020년에 발간한 보고서는 “패션업계가 현재의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기조를 유지한다면 전체 업계가 2030년까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21억 톤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수치는 이미 2018년에 패션업계가 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양과 같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이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힌 전 세계 온실가스 순배출량 감축폭은 2019년 대비 43%다. 이와 비교할 때, 2030년까지 그저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패션업계의 계획은 그다지 자랑스러워할 이유도, 우리에게 희망을 줄 이유도 많지 않아 보인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업계에만 주문하고, 소비자로서 편리하게 ‘선택권’만 갖겠다는 태도 역시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호주의 『더 컨버세이션』은 “지난 15년간 소비자가 옷 한 벌을 입고 버리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거의 40% 짧아졌고 유럽연합 국민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옷을 더 저렴하게 구입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옷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가 새로 구입하는 옷의 양을 75%까지 줄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전 세계 소비자의 69%는 의류 구매시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면서도(패션지 『보그』의 2021년 전 세계 설문조사), 매 시즌마다 새로 등장하는 트렌드에 맞춰 옷장을 비웠다 채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두 배로 늘었고 1인당 의류 구매 갯수는 60% 증가했다”는 맥킨지 사의 분석을 보며 ‘새로운 환경 전략’을 고민해야 할 대상은 단지 오래 입을 수 없는 저렴한 옷을 끊임없이 새로 내놓는 패스트 패션 업계만이 아니라, 몇 번 입지도 않은 옷을 재활용 의류 수거함에 쑤셔넣는 행위를 ‘재활용’이라 손쉽게 믿어버리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BBC』의 2020년 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버려지는 섬유 제품의 85%(약 1300만 톤)가 매립지 또는 소각장으로 향한다. 전 세계적으로 의류 제품의 재활용률은 12%인 반면에 종이, 유리, 플라스틱(PET)병류의 재활용률은 각각 66%, 27%, 29%다. 면과 화학섬유를 섞어 흡습성과 신축성을 동시에 잡은 기능성 의류, 폴리에스터나 아크릴, 금속 등의 재질로 예쁘게 꾸며진 청바지와 티셔츠 등이 실질적으로 재활용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복지시설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이 대신 입어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는 선진국이 돈을 주며 산업폐기물을 저개발국 국가에 내다버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폐기물을 그저 다른 사람(경제적 약자)에게 넘겨주는 행위일 뿐이다.
선택과 배움의 지평 넓히기
‘맛있고 살 안 찌고 만들기 쉽고 값도 싼’ 음식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싸고 멋있고 친환경적인 옷’ 역시 적어도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의류업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구입해 활용하고 내다버리는 모든 제품에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친환경적인 이미지메이킹의 선두에 서 있는 세계 일류 기업들이 만드는 전자제품과 전기차 등의 배터리나 회로에 들어가는 주요 금속물질의 제조 과정은 여전히 환경 친화적이지도, 인권 친화적이지도 않다. 기업의 환경보고서는 굳이 이런 내용까지 담고 있지는 않으며 대다수 소비자의 관심도 이러한 보고서에 단정하게 적힌 숫자 너머를 향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점점 더 ESG를 강조하는 기업과 자신의 소비에 환경을 고려한 소비에 신경을 쓰려는 소비자의 행보를 환영하면서도,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우리가 함께 짚어야 할 것은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제품의 생산과 소비뿐만이 아니라 그 활용과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쉽고, 간편하고,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폼나는 방법이 있으리라 믿는 대신, 지금 우리가 가진 최신의 지식과 최선의 방법과 기술을 최대한으로 동원해야만 가까스로 이 “목숨을 건 전쟁”(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전 세계의 기후 행동을 촉구하며 사용하는 말)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우리의 패션 라이프가 지속가능해지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적게 옷을 사서 더 오래 고쳐가며 입을 각오를 해야 하며, 업계도 단지 제품 제조와 판매뿐만 아니라 전체 순환 과정이 더욱 잘 이루어지도록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 기업의 ESG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 역시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환경을 위한 실질적인 기여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하며, 기업도 더 정확하고 세분화된 데이터와 실질적인 활동 내역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기업도 친환경 행보를 강조할 때마다 함께 불거지는 ‘그린 워싱(greenwashing; 실질적 효과 없는 기업의 ‘위장 환경주의’를 꼬집는 말)’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 그리기’ 이상의 환경교육
우리는 지금보다 우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이 지구의 환경 위기와 그 극복 방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우고 고민해야만 한다. 지구를 위한 선택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지 지갑을 열 때만이 아니라 전체 삶 속에서 더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기업의 웹사이트나 환경보고서를 빼곡하게 채운 숫자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환경 관련 지식은 여기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교육 현장에서 ESD를 강조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급식실에서 잔반 줄이기 캠페인을 펼치고,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가져와 자원순환 벼룩시장을 여는 것 등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의미와 메시지가 있는 활동이지만, 이제 교육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세대가 소비자로서, 생산자로서, 그리고 경영자와 지도자로서 더욱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환경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지식과 경험과 영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이집트의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유네스코는 ‘수준 높은 기후변화교육을 위한 청년의 요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 청년의 70%가 현재 자신들이 기후변화교육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66개국의 청년 1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27%는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고 2%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자신들이 기후변화에 대비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낀다고 했다. 청년들은 특히 기후변화 포스터 그리기 등의 지루하고 수동적인 환경 교육 대신 “학교 바깥에서 지역 기관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실험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다”면서, 77%의 응답자가 더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강사로부터 환경 문제의 복잡한 측면을 다룰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강력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현 시점에서 최선·최신의 기후위기 해결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논의되고 있는지, ‘(자원) 순환 경제’와 같은 대체 경제 체제의 가능성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도 알고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소개한 패션 업계의 친환경 행보를 조망한 유네스코 『꾸리에』 기사에서 필자인 올리비아 핀녹은 “앞으로의 패션은 우리가 무엇을 입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패션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 되리라고 전망하면서, “그 새로운 관계란 기업의 성공이 더 많은 옷을 찍어내는 것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의 낡은 옷이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이 되는 관계”라고 썼다. 이 말을 지속가능발전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하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지속가능성이란 우리와 환경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며, 이는 기업의 성공이 더 많은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이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순환시키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관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새로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 특히 ‘지속가능성의 모든 측면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해 줄 통합적인 ESD’(2021년 지속가능발전교육 베를린 선언문 중에서)라고.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