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등재, 문화유산

화성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성곽입니다.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는 갖가지 개혁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던 군주였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비명에 간 자신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절절히 그리워했던 효자로도 유명합니다. 사도세자는 당쟁에 휘말려 뒤주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세자였지요. 정조는 즉위한 이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명당으로 꼽히던 수원 화산(지금의 화성)으로 옮겨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지요. 이때 화산 부근에 있던 고을을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고, 주민을 함께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성곽을 쌓는데요, 이 성이 바로 화성입니다. 수원 화성은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근간으로 세워졌지만, 그의 원대한 꿈이 깃든 개혁정치의 시험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정조가 권세를 쥔 신하들의 터전인 한양에서 벗어나, 신도시 화성을 중심으로 당파 정치를 근절하고 새로운 왕도 정치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세워진 화성은 이전의 조선 성곽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새롭게 축성된 성이라는 점, 그리고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의 개념이 하나로 합쳐진 성곽도시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또, 성을 쌓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서양의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도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규장각의 문신 정약용이 고안해 낸 거중기와 녹로(도르래 기구)를 사용해 큰 석재를 옮기고 쌓은 사실이 그러한 예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어용 시설이 다양하게 설치된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점도 화성이 지닌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