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수상자 박현성 교수
박현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오랜 기간 암이나 혈관계 질환 치료법 개발에 기초를 다지는 후성유전학 연구 분야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여성과학자들의 연구환경 개선과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제22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박현성 교수를 만나보았다.
이번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먼저 교수님의 연구분야에 대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에 약대에 진학했다가, 당시 태동기 학문이었던 ‘분자생물학’을 접하게 되었어요. 사람의 몸은 ‘수정란’이란 하나의 세포에서 분화된 약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집니다. 그 모든 복잡한 절차는 DNA에 저장이 되어 있지요. DNA는 4가지 염기(A,C,G,T)가 반복되는 4진법의 숫자처럼 1차원적인 정보인데 어떻게 그 정보가 시간과 공간에 맞게 정확하게 출력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DNA 정보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지만 그 많은 정보 중에 어떤 유전자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출력할 것인지는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러한 유전자 출력 방법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 ‘후성유전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밤에 야식을 먹거나 운동을 안하면 근육을 생성하는 유전자는 적게 만들어지고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는 더 많이 만들어져요. 우리의 선택은 곧 의지이고, 우리의 의지가 유전자의 출력을 결정해서 단백질이라는 물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정신이 물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유전자 출력이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듯,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 나아가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세상사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죠.
수많은 선택 중에서 과학자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할 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와 ‘자율성’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가장 행복한 직업인 것 같아요. 재밌어서 일하는 사람은 못 당한다고 하죠? 저에게는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어요. 재미와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선택의 결과가 가치가 있는 것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도 필요하지요. 물론 저 혼자만으로 이런 성과를 이루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제가 교수로서 이렇게 연구를 할 수 있게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학생들과 함께 연구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정부와 학교에 감사합니다. 수익 추구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기초과학연구는 특히 지원이 더 필요한 분야인데, 저는 이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계 내에 성평등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현재 과학계 내에서 성평등과 관련된 이슈는 과거에 비해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과학계에서의 성평등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시상식에서 ‘나는 성차별의 경험이 없다’라고 말을 한 수상자도 있었던 것처럼, 제 생각에는 성평등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각은 다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쪽에는 성평등이나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원치 않아 주제를 기피하는 분이 계실 수 있고, 탁월한 능력으로 성차별의 경험이 전무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토큰여성’으로서 남성중심조직에서 상징적 역할을 하는 여성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따라 성차별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성평등이 개선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참 다행이지만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여성들이 경력이 단절되고 고위직 승진이 어려운 현상을 보면, 여전히 사회적 문제들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집단마다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 변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차별이겠지요. 집안마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여성들이 가정에서 받는 불이익은 정말 가정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인식 변화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서울시립대 융합응용화학과 초대 학과장을 역임하셨고, 이번 시상식 패널토론의 주제도 ‘과학의 융합에 있어 다양성의 역할’이었습니다. 융합과 포용의 시대에, 과학 교육과 연구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융합을 하며 발달했기 때문에 과학 자체가 융합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굳이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붙이려는 트렌드는 오히려 사회가 과학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처럼 보이기도 해서 아쉬워요. 다양한 이론과 기술을 융합하고 통섭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그러한 프레임보다는 균형잡힌 과학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시에서도 과학 과목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최근의 ‘킬러 문항’과 ‘변별력’ 사이에서의 논의보다, 오히려 모든 기초 과학 과목을 입시에 도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과목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배워서 장기적으로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으니까요. 또한 과학은 관념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험과 시도를 통해 측정하고 관찰하고 증명을 하면서 개념을 확고하게 다져 나가는 것이 중요한 학문입니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죠. 마음 같아서는 ‘킬러 문항’을 없앤 자리에 실험과목도 늘리고 체력과 정신단련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체육과목을 넣고 싶지만 이 또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집니다. 내 인생의 학문을 입시선택으로 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과학 교육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후원홍보센터 최연수 전문관, 김태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