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정 경북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주변에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여성 수학자’를 찾기란 더 어렵다. 2021년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펠로십의 수상자이자, 다양한 감염병에 대한 수리모델링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 수립 및 시행에 큰 기여를 해 온 여성 수리과학자인 이효정 교수를 만나 수학자로서의 일, 그리고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수학이 갖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교수님께서는 지난해 제20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펠로십 수상자 중 유일한 수학자로서 코로나19 감염 환자 예측 및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정책 효과 분석 연구를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수학과 의학, 수학과 질병의 접목은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요?
저는 수학 통계적인 방법을 통한 감염병 예측 관련 연구를 10년 정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 분야가 점차 더 알려지게 되었고, 수학 통계의 이론 및 기술과 방법론을 의료, 기업, 공공서비스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점차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작년부터 1-2주 간격으로 코로나19 예측 리포트를 질병관리청에 제출해서 과학적 분석결과를 정책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리 모델링과 결합해서 분석하는 작업인데요. 예를 들면 거리두기 시행의 연령별·지역별 효과성 분석이라든가, 지역별 인구 이동 패턴에 따른 감염 확산 예측, 백신접종의 연령별 효과, 거리두기 단계 조정에 따른 환자 및 사망자 규모를 예측해서 사회적 비용이 어떻게 될지를 아주 대략적인 범위에서나마 산출해보는 작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건이라 외부 공유를 상당히 통제하고 있는데, 코로나 대응을 위해 주기적으로 소통하면서 데이터를 공유받고, 분석 결과를 공유하면서 협업이 상당히 활성화될 수 있었습니다.
— 말씀을 들어보니 교수님의 연구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3번(SDG3; 건강과 웰빙, 모든 연령층의 건강 보장과 복지 증진)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해당 분야에서 수학이 맡을 수 있는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전세계적으로 최근 4-5년 주기로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신종 감염병을 좀더 선제적으로 예측해서 조기에 대응하거나, 연령별 백신 효과성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백신접종 간격이나 방식을 찾는데 있어 수집된 데이터의 수학 통계적 분석결과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약을 개발할 때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고, 의료 영상의 노이즈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도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최근에는 의료계와 수학 통계쪽 전공자들이 협업해서 연구하고 특허를 내는 등, (인류의 건강과 복지 증진을 돕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 오늘날 수학은 방대한 데이터를 적절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학적 분석법을 잘못 적용하면 오히려 그릇된 정보를 양산할 위험도 있습니다. 수학적 통찰이 ‘진실’로 이어지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수학, 통계, 예방의학 등 각각의 전문분야에 따라 동일한 현상이나 데이터를 갖고도 접근방식,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해석 방향, 용어나 표현 방식이 상당히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현상을 분석해 유효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각 분야가 단절된 채 연구하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이 연계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간에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기존에 간과했던 요소를 새로운 변인으로 추가하게 되기도 하고, 분석 방식을 보완하면서 연구 결과의 질이 향상될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의 인용도나 영향력 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학문 간 논의를 거치면서 새로운 연구 주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물론 전공 분야 간의 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기서 오는 어려움을 충분히 감수할만큼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이번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물꼬가 트인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공동연구의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 수학자로서 일본 홋카이도대 의학대학원에서 수학-의학 융합연구를 진행하셨습니다. 학문 간의 융합은 이제 더는 새롭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개념이지만, 이를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일 것 같습니다. 융합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이라면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을 신경써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에서 수리생물학(Biomathematics)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홋카이도대 의학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타분야에서 박사를 마치고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 주변에서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그 전에 여기서 개최한 서머스쿨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발히 협업하는 모습을 접한 것이 동기부여가 됐었고, 다행히 홋카이도대 의학대학원도 성실성과 의욕, 잠재력을 보고 제게 그런 기회를 주셨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머신러닝이나 빅데이터 분석 등의 분야가 뜨면서 연계·융합전공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 목표가 취업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런 융합 분야 연구는 이미 확립된 길이 있는 게 아니어서 진로의 방향을 잡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상담을 해 보면 뛰어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학업 중단을 고려하는 경우도 보여요. 하지만 본인이 자신의 분야에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다 보면 멘토 교수님이나 선배, 관련 분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분명 찾을 수 있어요. 저 역시 이쪽 분야 연구를 선택했을 때 취업의 길이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면서 정말 행복하게 공부했고, 그래서 더욱 집중해서 단기간에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이 다양한 커리어로 이어지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어요. 학생들에게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를 권합니다.
— 흔히 수학공식은 우리의 일상과 무관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수포자’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수학을 어려워하고 때로는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앱과 다양한 데이터에는 수학과 통계적인 논리구조와 분석 방법을 토대로 한 알고리즘이 포함돼 있습니다. 수학적인 논리구조를 알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 표면적으로만 보이던 일상의 단면을 훨씬 깊이 이해하고, 또 응용해볼 수 있는 감각이 생기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 수학을 공부할 때는 시험을 위한 ‘문제’로만 보니까 이게 어떻게 쓰이고 왜 내가 이걸 배워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어요. 이론을 배울 때도 실생활과 좀 더 연결지어 수학이 구현되고 있는 사례를 시각화해서 보여준다거나 하면 수학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여성과 수학, 그리고 여성과 과학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적잖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 여성 수리과학자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궁금합니다.
여성 과학연구자의 수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연구와 가정의 일을 병행하는 것이 체력이나 시간 면에서 힘들어 연구 커리어를 인생 스케줄의 중심에 두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학업을 접게 되기도 합니다. 연구를 하다보면 진척이 없어서 낙담하게 되거나, 이 길이 내게 맞는 건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힘든 시간을 마주하게 되기 마련이에요.
제 경우에는 그때마다 선배나 멘토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던 것이 짧은 시간 안에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한 명의 연구자가 성장하기까지는 교수님, 선배, 멘토 같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뿐만 아니라 학회, 커뮤니티, 지원 프로그램 같은 환경적인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훌륭한 업적을 이룬 뛰어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의미가 있지만,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크게 도약할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거든요. 저도 주위의 많은 도움과 격려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에게도 서포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터뷰 진행
최연수 과학청년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