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14일, 그리고 2020년 6월 14일. 6·25전쟁 발발 직전에야 유네스코에 가입할 수 있었던 나라는 70년 후인 지금,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앞장서 헤쳐 나가며 세계의 찬사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되새기는 데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가 또 있을까. 70년 전 그때와 70년 후 오늘, 우리나라의 두 모습을 돌아보며 한국과 유네스코 앞에 놓인 길을 생각해 본다.
냉전의 그늘 속에서 두드린 문
1948년 8월 15일, 일본 패망 후 3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부를 수립했다. 희망과 과제를 동시에 품고 출발한 한국에 먼저 필요했던 것은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경제 원조를 통해 최소한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마침 인류는 두 차례 세계대전 직후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945년 유엔을 창설했고, 같은해 11월 교육·과학·문화 분야의 국제 협력을 통해 세계 평화 구축에 공헌한다는 꿈을 안고 유네스코도 창설된 터였다. 이에 정부는 1949년 7월 5일 대통령 특사 겸 유엔대표단장이었던 조병옥 박사로 하여금 주미 유엔 연락관을 통해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네스코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이기에 유엔 회원국은 자동적으로 유네스코 가입 자격을 갖게 되지만, 한국은 당시까지도 유엔 가입을 승인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유엔이 한국을 한반도의 합법 정부로 승인한 직후인 1949년 1월에 유엔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사안은 같은해 2월 15-16일에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표결에서 찬성 9표, 반대 2표로 통과되는 듯 보였지만, 4월 8일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좌절되고 만다.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창설된 유엔에 이미 그때부터 동서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진영 간 대립 구도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된 1991년까지 무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번번이 한국의 유엔 가입을 가로막게 된다.
다행히 특정 국가에 거부권과 같은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각국이 총회에서 1표씩의 투표권을 공평하게 행사하는 유네스코에는 열강 간 대립구도와 관계없이 한국의 가입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단, 유네스코 헌장에 규정되어 있는 가입 요건에 따라 한국과 같은 유엔 비회원국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권고 의결을 거친 뒤 유네스코 총회에서 출석 회원국의 3분의2 이상 찬성을 얻어내야 했다.
1950년, 그때
한국의 신청서를 접수한 유네스코가 규정에 따라 검토를 요청하자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1950년 2월 7일부터 3월 6일까지 열린 제10차 회의에서 해당 안건을 상정했다. 여기서도 관건은 역시 소련과 동구권 회원국들의 입장이었다. 다행히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는 유엔 산하 모든 기구에서 중국 국민정부(오늘날의 대만) 대표 참가에 대한 항의 표시로 퇴장을 선언했고, 이로써 경제사회이사회는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가입 권고 결정을 내렸다(『동아일보』 1950년 2월 21일자). 이 결정을 통보받은 유네스코 집행위원회는 1950년 2월 25일 회의에서 같은해 5월 22일부터 6월 17일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제5차 유네스코 총회에 한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와 요르단의 가입 권고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5월 25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총회 제8차 전체회의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요르단 3국의 유네스코 가입 안건을 두고 회원국들의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에는 ‘마지막 고비’인 순간이었다. 가입 안건 상정 후 처음 발언한 호주의 로널드 워커 박사는 세 국가의 가입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고, 이어 네덜란드, 이라크, 필리핀의 찬성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이라크 대표 모하메드 파델 자말리 박사는 앞서 동서 진영 간 대립으로 유엔 가입이 무산된 국가들을 거론하며 “유엔의 가입 미승인은 특정 국가의 거부권 행사에 책임이 있으므로 유네스코는 이를 배격하고 이들의 가입을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동구권의 유고슬라비아는 한국 가입 반대 의사를 표했고, 버마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말하면서 가입안을 개별적으로 표결에 부칠 것을 제의했다. 자유중국의 웬유안닝 박사는 유고슬라비아 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인도네시아의 가입을 반대하는 등, 각국 대표들은 각자의 신념 또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표출한 끝에 한국의 가입 건을 거수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투표 결과 찬성 27, 반대 1, 기권 4라는 압도적 다수로 마침내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이 확정되었다. 옵서버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한 공진항 주프랑스 공사는 가입 확정 뒤 연설을 통해 각국 대표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한국은 모든 유네스코 회원국과 협력하여 유네스코의 숭고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총회 결의에 따라 6월 14일자로 한국은 공식적으로 55번째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었다. 6·25전쟁 발발을 불과 11일 앞두고 내려진 이 결정 덕분에 유네스코는 전쟁 와중에도 발빠르게 한국 교육 재건 사업에 나서는 등 한국이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었다.
2020년, 지금
그로부터 70년이 지나 2020년의 6월이 되었다. 70년 전 그때와 달리 한국의 지금은 눈부시다. 유엔 가입을 거부당하고 별도의 절차를 거쳐 힘들게 유네스코에 가입해야만 했던 아시아 동쪽 끝의 가난한 나라는, 어느새 유네스코 내 여러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당당한 회원국이 되었다.
그간 한국이 이룩한 성장에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한 근거는 한둘이 아니다. 유네스코 내에서 그 중 하나를 찾자면 한국의 분담금 납입 증가 추이를 들 수 있다. 6·25전쟁이 끝나고 비로소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설립된 직후인 1954년 유네스코 총회 자료에 따르면, 당해 유네스코 회원국 분담금 전체에 대한 한국의 분담률은 불과 0.12%였다. 이는 미화 약 1만 2300달러로 당시 실론(오늘날의 스리랑카)과 같은 규모였다. 이후 1980년대 말 약 0.2% 에 이르기까지 미미하게 상승한 한국의 분담률은 1990년대에 1%를 돌파하고 2000년대에는 2%를 넘어선 뒤 지난해 2.926%에 이르렀다. 한국이 작년에 유네스코에 지급한 분담금은 미화 약 741만 564달러에 달하며, 이는 러시아에 이어 유네스코 내에서 열 번째로 많은 액수다. 비록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을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가입 이후 70년 만에 600배가 넘는 분담금 납입액 증가를 기록한 회원국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유네스코 분담금 액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 외에, 한국의 유네스코 내 활동 역시 몰라보게 성장했다. 지난해 한국은 2023년까지 임기의 집행이사국으로 재선출됨으로써 1987년 집행이사국 첫 진입 이후 2003-2007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집행이사국으로 선출돼 왔다. 회원국들의 투표를 통해 유네스코의 주요 사업 및 행정사안에 대한 제안, 심의 및 결정 권한을 갖는 핵심 의사결정기구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다는 사실은 곧 유네스코 내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 협약 정부간위원회의 차기 의장국으로도 선출되었으며,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정부간생명윤리위원회(IGBC), 모두를 위한 정보사업(IFAP) 정부간위원회 등 11개 유네스코 내 기구 및 정부간위원회에서 위원국 또는 이사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같은 위기, 다른 위상
이러한 변화 속에 가입 70주년 기념일인 6월 14일을 맞았지만, 가입 70주년과 평화를 향한 진전을 맘 놓고 축하하기에는 지금 이 세계가 직면한 상황이 엄중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지금 코로나19, 그리고 이로 인해 불거진 불확실성과 씨름하느라 여념이 없다. 각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지구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문을 걸어 잠갔고,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을 두고 두 초강대국은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근래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처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국의 국내 상황도 녹록치만은 않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빈부를 가리지 않지만 그 경제적 후유증은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부터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경제 시스템 곳곳에서 위기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오며, 무엇보다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70년 전에 가까스로 유네스코 가입 관문을 넘었지만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참혹한 전쟁 속으로 끌려 들어가야만 했던 한국의 모습을 떠올릴 때,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기시감마저 든다고 한다면 이는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그때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처한 위기의 정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때의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우선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의 우리는 위기 속에서도 주도적으로 그 너머에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만의 생존이 아니라 전 인류의 공존을 꿈꾸며 눈에 띄는 활약까지 펼치고 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 속에서도 오히려 ‘K-방역’의 노하우를 적극 지원 및 수출하며 인류의 위기 돌파에 앞장서 나서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 전 그때의 절박한 심정을 지금 새삼스레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금이 위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와 한국이 미래를 대비하는 비전과 이를 준비하는 자세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화의 소중함과 교육·과학·문화의 중요성을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뼈저리게 느껴 온 우리이기에, 유네스코가 그간 교육·과학·문화와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보여준 노력의 가치가 시간을 건너뛰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결같은 비전으로 열어갈 미래
실제로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협은 역설적으로 ‘새삼스럽지 않은’ 유네스코의 비전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위협 앞에서, 유네스코는 그간 한결같이 제안해 온 해법대로 인류의 위기 돌파를 주문하고 있다. 정보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고,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공유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함으로써 전 인류가 평화를 향해 협력하게 만드는 것. 창설 초기부터 유네스코가 견지해 온 이 오래된 비전은 코로나19와 같은 가장 최근의 위협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홈페이지 내에 ‘코로나19 대응’(COVID-19 Response)이라는 카테고리를 열고, 첫머리에서 “코로나19 확산은 전 세계의 공공 보건 위기인 동시에 유네스코의 사명을 관통하는 의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즉, 팬데믹 대응을 위한 과학 분야의 협력과 정보 공유, 수업 중단 등으로 인해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없도록 힘쓰는 ‘모두를 위한 교육’, 무분별한 허위 정보와 공포의 확산을 막고 새로운 뉴스와 지식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도울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싹트기 쉬운 환경에서 인간애와 연대에 대한 믿음을 지켜줄 문화와 지성의 힘을 키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당면한 코로나19 위기 타개를 위한 해법은 유네스코가 각 분야에서 펼쳐 온 활동 속에 이미 들어있다. 때문에 지금껏 본 적 없는 바이러스의 공세 앞에서도, 가입 7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과 유네스코 활동의 길을 모색하는 한국에게도,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새로운’ 해법은 한편으로 늘 ‘한결같은’ 해법일 수밖에 없다. 바로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상호 이해와 협력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도 최근 유네스코 『꾸리에』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전 인류의 협력’을 제시한 바 있다. 하라리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그저 의료보건의 위기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로 곳곳에서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위기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정말로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이로 인해) 인류의 마음 속에 자라나는 증오와 탐욕, 그리고 무지라는 악마”라고 경고했다. 또한 “모든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라며, “이를 계기로 전 인류가 협력할 수만 있다면,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기후변화나 핵전쟁 등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위협에 대한 승리가 될 것”이라 공언했다.
과연 인류는 하라리 교수의 말대로, 그리고 유네스코의 오랜 호소대로 분열과 배제가 아니라 포용과 협력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사사건건 갈등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남반구 빈국과 북반구 부국 간의 이견, 민족과 인종과 종교 간 차별과 혐오의 확산 등을 감안하면 이것이 지난 70여 년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여러 역사적·지정학적 악조건을 딛고 유네스코와 함께 70년의 기적을 일군 한국이라면, 어쩌면 이 오래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세계 각국의 본보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결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교육으로 가난 속에서 희망을 일구고, 문화와 과학기술을 통해 튼튼한 성장의 바탕을 마련했으며, 투명하고 민주적인 소통으로 위기 탈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우리이기에 갖게 되는 당연한 믿음이기도 할 것이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
[참고자료]
· 외교부 『2017 유네스코 개황』(2017)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에서 지구촌 나눔의 주역으로』(2014), 「한국유네스코활동사(1954-1975)」(1976)
· unesco.org “COVID-19 Response”, “Yuval Noah Harari: “Every Crisis Is also an Opportu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