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0주년,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선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는 먼저 2023년부터 2026년까지를 기한으로 ▲유네스코에서 대한민국의 리더십 강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국제협력과 연대 촉진 ▲유네스코 가치 확산 및 참여 진작을 중점목표로 삼은 바 있다. 이어서 지난해 새로운 사명과 비전을 선포하고, 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성공적인 70년을 넘어,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한위의 새해 다짐을 소개한다.
이제는 ‘미래문해력’의 시대
2024년, 새해를 맞은 우리에게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비록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게 보이지만, 지금 인류가 만들어 내고 있는 변화가 옳은 방향으로의 진전을 약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후폭풍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충돌은 그 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 세계의 합의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기후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임계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고, 변화의 양상을 예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인공지능(AI)기술을 비롯한 과학의 급격한 진보는 우리가 차분히 미래를 상상하고 대비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화와 지역소멸 사회로 접근하고 있는 한국 사회 내부만 보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위는 단순히 현재의 문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시대 변화를 관찰하여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책과 윤리를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규범화하는 ‘생각의 실험실(Laboratory of Ideas)’로서, 유네스코와 유네스코의 활동을 대한민국과 연계하는 한위는 더 많은 대화와 학제적 연구, 그리고 지적 연대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미래(Desirable Future)’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0세기 사회 발전의 첫 단추가 개개인의 문해력(Literacy)이었다면, 21세기 이후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 발전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미래문해력(Future Literacy)’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인구학적-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중장기적으로 다루어야 할 다양한 미래 문제를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예측하고 대응하는 역량을 의미하는 미래문해력은 사실 지난 70년의 역사 속에서 한위가 한국 사회에 던져 온 화두 속에도 늘 녹아있었다. 카라치 플랜을 통한 초등 의무교육 확대(1960년대), 자생적 발전을 위한 사회과학(1970년대), 사회변동에 대응하는 커뮤니케이션 정책(1980년대), 과학기술 생명윤리(1990년대), 정보사회 성찰(2000년대), 변화에 발맞추는 인문학(2010년대) 등, 한국 사회에 변화가 필요했던 변곡점마다 한위는 한발 앞서 미래 의제를 발굴해 지금-여기 필요한 행동을 제시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위는 앞으로 한위의 미래 활동 방향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올해 중으로 20-50대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대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국의 교육·과학·문화·정보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주제로 하는 이번 조사는 점점 심화되는 지구화와 첨단과학기술의 급격한 변화, 점점 다양해지는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 등 우리 사회의 변화의 동인이 될 요소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파악하고,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그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던져야 할 화두를 가다듬어 보고자 한다.
사회가 원하는 미래를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슈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지적인 대중의 지지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 주요 이슈를 유네스코 관점에서 해석하고,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시민들이 균형잡힌 관점과 국제적 안목을 갖도록 해 줄 기회로서 유네스코 토크 역시 두 차례 열린다. 이는 2050년 경 예상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전망해 보고,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모색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유네스코를 둘러싼 이슈들을 다루는 이슈 브리프도 올해 네 차례 발간된다. 이 보고서를 통해 한위는 기구의 주요 전략 및 정책과 관련한 ‘미래’의 함의를 모색해 보고, 향후 더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데 참고하고자 한다.
‘함께’ 열어야 할 교육의 미래
지난 세기의 사회 발전 경로에서도 그러했듯, 교육은 21세기 이후에도 대한민국과 전 세계가 어떤 모습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지를 결정할 핵심 변수 중 하나다. 유네스코가 교육을 ‘공공재(common good)’로 규정하면서 누구나 어느 시기에든 장소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워야 함을 알고, 배울 줄 알며, 배울 기회가 차별 없이 주어지는 시민이 많아질 때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전 세계적 동력도 커질 수 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유네스코가 ‘교육의 미래 보고서’인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펴내면서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또한 평등하고 포용적인 교육 기회와 양질의 교육이다. 팬데믹 과정에서도 목격했듯, 지금 인류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변화는 교육의 전면적 변화를 점점 더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중심에 둔 능력주의(meritocracy)가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지속가능발전교육(ESD) 및 세계시민교육(GCED)과 같은, 21세기적 시민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교육으로 국가 재건과 발전을 이룩한 모범 사례로서, 한국 교육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곧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할 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한위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유네스코 교육의 미래 국제 포럼(UNESCO International Forum on the Futures of Education 2024)’은 이러한 교육 변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동시에, 국제 교육의제를 적극 이행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는 11월 4-6일 수원에서 개최될 이번 포럼에는 유네스코 회원국 교육 분야 인사, 유엔 등 국제기구 인사, 국내외 학계 전문가, 교육 행정가, 시민사회단체 인사, 교사, 청년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공동재로서의 교육을 향해(Transforming Education as a Common Good)’를 주제로 국제사회의 미래 교육 정책과 실천 동향을 공유하고 회원국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전국 500여 개 학교가 가입해 교육 현장에서 유네스코의 정신과 가치를 이행해 오고 있는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 역시 올해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기존의 ‘지역 중심’에서 ‘주제 중심’으로 운영 방식을 전환함으로써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는 유네스코가 교육의 미래 보고서에서 ‘파괴적 전환(disruptive transformations)’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4개 영역인 ▲환경·생태 ▲디지털 ▲인권·다양성 ▲직업·진로 분야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모색해 보고, 이를 한국의 교육 현실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보고자 한다. 미래 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세계시민교육 역량을 강화하고, 2022 개정 교육과정 등 변화하는 교육 정책에도 호응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질 이런 변화를 위해 한위는 유네스코학교 100개교가 참가하는 ‘교육의 미래’ 대응 클러스터를 운영한다. 더불어 교사 대상 시민교육 교수학습 역량 강화 연수도 마련하는 한편, ‘청소년 세계시민 진로 체험 멘토링 타당성 연구’ 등의 신규 사업을 추진해 자유학기(또는 자유학년) 기간 동안 학생에게 관련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해당 분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생애주기별 계획 설계를 돕는 프로그램 개발도 검토해 볼 예정이다.
한위 교육사업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지구적 단위에서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브릿지 사업은 2024년에도 흔들림 없이 그 여정을 이어간다. 2022년에 지역학습센터 설립 및 운영 109개소, 교사 및 관계자 역량강화 연수 참여 1461명, 맞춤형 비형식교육 프로그램 참여 9481명, 교재 및 교육물품 배포 25319건 등을 달성한 바 있는 브릿지 사업은 올해에도 총 8개 협력국(동티모르, 라오스, 말라위, 부탄, 스리랑카, 우루과이, 요르단, 파키스탄)의 학교 밖 비형식교육을 지원하면서 그 이상의 성과를 내고자 하며, 아울러 매년 발간하는 연차보고서 외에 연구보고서도 9건 발간한다. 하반기(10월)에는 사업 협력국과 관심국, 유네스코협력 및 교육개발협력 전문가와 활동가, 청년이 참여하는 브릿지 워크숍을 열어 국별 경험 및 성과 공유를 통한 동료학습을 도모하고 한위 70주년 기념 행사 등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차별과 혐오 아닌, ‘평화의 문화’로서 유네스코의 가치 확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고, 과거에는 유효했던 수많은 가치가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세기를 지나 21세기, 아니 그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평화의 방벽을 쌓아야 할 곳은 다름아닌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유네스코의 이상이다.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전 지구적 규모의 재앙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으지 않고는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그러한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인류의 마음 속에 ‘내 민족’과 ‘내 문화’를 넘어서는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아야만 한다는 것이 유네스코와 한위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하지만 상호 이동성과 연결성이 극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난민과 이주민 배척, 세대 격차와 반목,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로 인한 갈등 확산 등을 우리는 매일같이 세계 도처에서 목격한다. 이러한 갈등을 마음속에서부터 풀어나가는 데 다양한 문화와 지식의 교류, 상호 대화가 유효하다는 것은 지난 70년 이상의 세월 동안 한위와 유네스코가 끊임없이 증명하고자 노력해 온 부분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협약(1972), 문화다양성협약(2005) 등을 통해 상호 이해와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규범적·제도적 바탕을 마련했으며, 세계유산과 무형유산, 기록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창의도시 등의 제도를 통해 다양한 종류와 배경을 가진 유산을 보전하는 것이 곧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전제 조건임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한위는 다양한 문화 간의 대화 채널을 열어 갈등 해소를 도모하는 한편, 가능한 모든 회원국들이 유네스코의 사업에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데도 늘 ‘진심’을 다해 왔다. 동아시아역사화해를 위한 국제포럼과 청년포럼, 세계유산해석 국제회의 등의 개최는 상호 공유하는 역사 인식과 유산의 포용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 바 있으며, 회원국 중에서도 손꼽히는 유네스코 유산 등재 경험을 갖춘 위원회로서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과소등재국의 역량 강화를 15년째 도와 오고 있다. 6월에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 개최될 올해 워크숍에서는 특히 15주년을 기념한 주제연구발표 등의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1994년부터 한국 주도로 활동해 온 동북아생물권보전지역네트워크(EABRN)는 몽골과 북한, 카자흐스탄 등지의 생물권보전지역 관련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으며, 올해에는 환경부 지원으로 마련한 EABRN 신탁기금 5만 달러를 전달함으로써 참가국들의 효능감을 더욱 높이게 될 전망이다.
좀처럼 활짝 열리지 않는 한일 양국 간의 화해와 공존의 문을 두드리는 일도 계속 이어진다. 2001년부터 시작된 ‘한일교사대화’가 그것으로, 지난해까지 양국 교육자 및 학생 간 인적 교류협력에 동참한 참가자는 총 3126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교류가 재개되어 1월에는 국내 유네스코학교 교사 및 교육 분야관계자들이 일본 동북 지역 2곳을 방문하고, 7-8월 중에는 일본 방문단이 서울 및 수도권 외 도시를 찾아 양국 교육제도 및 현안을 논의하고 세계유산을 탐방하며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 관련 공동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70주년 모금 캠페인 ‘70GETHER’ 더 가까이, 더 널리 드러내는 한위의 존재감
“사람, 자원, 지혜를 모아 지적 도덕적 연대를 다짐으로써 한국을 빛내고 인류에 공헌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70년을 앞두고 한위는 지난해 새로 수립한 비전이다. 이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미래 변화 대처 ▲교육 격차 완화 ▲사회·문화 갈등 해소라는 세 가지 중점 사업 방향을 세우고 혁신을 시작한 한위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70주년 모금 캠페인 ‘70GETHER’를 통해 조직과 한국 사회, 나아가 우리 인류의 담대한 변화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 이 모금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부자는 위 세 가지 중점 사업 중 하나로 지정 기부를 하거나 특정 사용처를 지정하지 않는 비지정 기부를 택할 수 있으며, 한위는 후원 금액에 따라 기부확인서 발급에서부터 소셜미디어 홍보, 기념품, 주요 행사 참석 등 기부의 보람과 효능감을 높여줄 예우도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
유네스코학교와 기업 및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참여 프로그램도 꾸준히 이어나간다. 학교에서는 ‘Dream 드림 캠페인’을 통해 일반 대중과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한위 교육 사업에 꾸준한 관심과 후원을 이어오고 있는 스마일게이트와 함께 스리랑카에서 브릿지 교육지원사업도 이어간다. 지난해 케이팝 그룹 ‘세븐틴’과 함께 전 세계의 호응과 관심을 끄는 데 큰 성공을 거둔 교육의 미래 글로벌 캠페인(‘고잉투게더’ 캠페인)도 올해 11월 캠페인이 마무리 될 때까지 다양한 한위 및 유네스코 행사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참여를 호소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네스코뉴스』를 온라인 뉴스레터로 전면 전환함으로써 유네스코와 한위 내외부 소식을 더 많이, 더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개편하는 한편, 기존 SNS활동도 더욱 젊고 활기찬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과의 소통을 늘려 나가고자 한다. 2024년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70년과 그 이후의 시작을 알리는 올 한 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활동을 지켜봐 주시길!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