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마친 수험생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내셨나요? 가채점 결과에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 한 주였겠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어느 정도 가벼워질 수 있었을 거라 믿어요. 그리고 시험 결과와 상관 없이 《유네스코 뉴스레터》가 언제나 여러분의 멋진 앞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시죠?
지난 한 주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구성원들에게도 잠시나마 한 숨 돌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2년마다 돌아오는 유네스코의 가장 큰 행사인 유네스코 총회가 무사히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죠. 10월 30일부터 11월 13일까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총회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도, 명동 사무실에서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친 사람들도, 기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새 사무총장 선출에서부터 신경기술윤리 권고 채택, 그리고 김구 기념해 선정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전해야 할 소식이 특히나 많았는데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총회 때 나온 굵직굵직한 소식들을 쉽게 정리해 여러분께 바로 ‘배달’해 드릴게요.

2025년 11월. 20세기 중반 이후 대다수의 국가들이 적응해 왔던 세상의 질서는 지금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표현도 썩 과장되어 보이진 않을 정도죠. 미국은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 리더로서도,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본보기로서도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다른 모든 나라들에 더 적극적인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적 도덕적 연대’를 통해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유네스코에 있어 달가울 리 없는 변화인데요. 그런 가운데 열린 제43차 총회. 미국과 니카라과가 탈퇴를 선언하는 등 국제 정치는 하나로 모이는 구심력보다 뿔뿔히 흩어지는 원심력이 더 커 보이는 상황에서도, 회원국들은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유네스코의 길을 가기로 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상 최초로 아랍 출신 리더를 뽑았고, 4년 전 AI에 이어 이번에는 ‘신경기술’의 발전과 활용에 있어 윤리적 나침반이 되어 줄 권고를 채택했죠. 그리고 우리나라로서는 일찍이 ‘힘’과 ‘경제력’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용적인 문화를 통해 세상을 이끄는 것을 꿈꿨던 김구 선생의 기념해가 지정되었다는 소식도 더욱 반갑고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 긴축 아닌 긴축 같은 예산안 확정
- 오랫동안 유네스코의 가장 든든한 예산 공여국이자 밀린 공여금 또한 가장 많은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를 축하하던 기억도 잠시, 유네스코는 다시금 예산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고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재탈퇴를 선언한 미국의 탈퇴가 이대로라면 2026년 말에 확정될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회원국들은 총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예산안 확정 과정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심을 해야만 했습니다.
-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2026-2029년까지의 유네스코 살림살이를 확정하는 예산안은 총회에 앞서 열린 제222차 집행이사회에서 그 가닥이 잡혔는데요. 회원국들은 사무국이 제안한 몇 가지 안을 두고 논의한 끝에 ‘명목 예산 동결(Zero Nominal Growth)’을 골자로 하는 예산안을 확정했습니다.
- 그에 따라 정규예산 상한은 6억 1천만 달러로 확정되었는데요. 이와 같은 동결은 물가나 비용의 상승분을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회원국들은 향후 유네스코의 재정 상황을 긴밀히 챙기면서 조직과 활동의 효율화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는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산 압박이 유네스코의 핵심 사업을 비롯해 아프리카·성평등·소도서개도국(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우선순위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히 했어요.
- 한국 역시 집행이사국으로서 명목 예산 동결안에 찬성을 표하면서, 한정된 예산 안에서도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디지털 전환과 AI 등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유네스코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할 것을 주문했어요.
+ 새 리더 선출에 담긴 유네스코의 메시지

- 지난 10월 알쓸U잡에서도 소개했듯,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향후 4년 간 유네스코를 이끌 새 사무총장(Director General)으로 이집트 출신의 칼레드 엘에나니 후보를 최종 선출했습니다. 엘에나니 후보는 11월 6일(현지시각)에 실시된 전체 투표에서 찬성 172표, 반대 2표, 기권 1표를 얻으며 차기 사무총장으로 확정되었어요.
- 집행이사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된 사무총장 후보자가 총회 투표에서 부결된 사례가 지금껏 없었다고는 해도, 이번 사무총장 선출을 통해 회원국들은 최근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는 국제사회를 향해 유네스코만의 용기 있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편향’을 이유로 끊임없이 유네스코를 비난하며 급기야 탈퇴를 선언했음에도, 최초의 아랍계 사무총장 선출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죠.
-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였을까요. 선거 기간 내내 ‘모든 이를 위한 유네스코(UNESCO for the People)’를 강조해 온 엘에나니 사무총장은 취임 첫 메시지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로벌 위기 앞에서 유네스코는 대화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문제 진단을 공유하고, 이곳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사업을 구축하고, 이곳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곳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들이 비로소 실현되어야 합니다.”
+ 인간 정신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하라 – 신경기술윤리 권고 채택
- 우리 각자의 정신세계는 누구의 것인가요? 당연히 각 개인의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눈부시게 발전하는 21세기의 신경기술(neurotechnology)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점점 모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경기술은 뇌와 신경계의 활동을 측정·분석·조절하는 의료 및 비의료 분야의 기술을 통칭하는 말인데요. AI의 발전과 더불어 최근 이 분야에서도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고, 이는 곧 단순히 뇌의 신호를 정확히 분석·전달해 의족이나 의수를 조작하는 것을 넘어 기술이 우리의 사고나 감정, 기억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 그래서 4년 전에 AI 분야의 발전과 활용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AI윤리 권고’를 채택했던 유네스코는 이번에도 가장 먼저 신경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유의 독립성과 자율성(autonomy and freedom of thought)’을 침해하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필요한 표준을 설정하는 작업에 나섰어요. 그리고 2년 여에 걸친 연구 및 논의를 거쳐, 이번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신경기술윤리 권고(Recommendation on the Ethics of Neurotechnology)’를 채택했습니다.
- 이번 권고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 보호, 사유의 자유와 정신 프라이버시 보장, 데이터 보호와 책임성, 비차별과 포용, 지속가능성 및 국제 협력 등 9개 핵심 원칙을 담고 있는데요. 다음 주 ‘유네스코 Talks’에서는 권고 논의 및 채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생명윤리정책 협동과정 교수로부터 더 자세한 이야기도 들어볼 테니 이 또한 기대해 주세요!
+ 유네스코의 비전을 먼저 꿈꾼 한국인, 백범을 기념하다

- 유네스코 총회가 열릴 때 일반 대중들의 관심사가 되는 의제 중 하나가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입니다. 유네스코는 2년마다 회원국들로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관련 기념해 지정 제안을 접수하고, 그중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한 국가 간 협력 촉진과 평화와 안보에의 기여라는 유네스코의 목표와 가치에 부합하는 것들을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하고 있는데요. 이번 총회 기간에 확정된 기념해 중에는 한국이 제안한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도 있어서 우리에게 특별히 반가운 뉴스가 되었습니다.
-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을 잘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텐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주역이자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김구 선생의 어떤 부분이 유네스코의 목표와 가치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을 통해 세계 평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선생의 비전이 지금 유네스코의 존재 가치와 너무나도 가깝다는 점입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는 선생의 그 유명한 말은,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유네스코 헌장의 핵심 메시지와 놀랍도록 가까워요. 대화와 포용, 문화의 다양성이야말로 현재 우리의 위기를 해결할 열쇠라는 유네스코의 믿음과도 일맥상통하죠.
-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카메룬, 중국, 코트디부아르, 말라위, 나미비아, 태국, 베트남, 잠비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여덟 개 국가들도 우리나라의 기념해 제안에 적극적으로 공동 지지국으로 참여했습니다. 더군다나 강대국들의 일방통행식 외교가 갈수록 심해지고 문화적으로도 몇몇 주류 문화의 지배적인 위치가 공고화되면서 소수 문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문화를 중심으로 한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을 기념하는 활동과 목소리는 앞으로 전 세계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시작되는 2026년. 내년 한 해 동안에는 김구 선생의 목소리를 빌어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평화와 다양성의 메시지가 더욱 널리 퍼져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