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국민들 마음을 타들어가게 했던 산불은 우리 국토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어요. 생명과 재산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야생동물들, 그리고 시커먼 숯덩이와 맨살을 드러낸 채 신음하고 있는 산⋯. 이토록 슬픈 풍경이 매년 반복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이라도 더 지속가능한 삶의 방법, 더 효과적인 재해 예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텐데요. 뿐만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는 푸른 숲이 ‘당연히 늘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 가꾸고 지켜야 할 공동의 재산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해요. 지난 4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등재된 ‘산림녹화 기록물’에 담긴 내용을 보면, 한반도의 숲은 저절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우리가 직접 일군 소중한 자산이었음을 알 수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번 뉴스레터가 만나본 인물은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예요. 1970년대에 전 국민이 손수 심었던 자그마한 묘목들, 그 묘목들이 자라고 자라 푸른 우리 국토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이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우리가 산을 더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이유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유네스코 유산 팩트체크 ✅ | 산림녹화 기록물(Korean Republic Forest Restoration Records)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국제목록에 등재된 산림녹화 기록물은 민·관이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만든 각종 공문서와 일지, 사진, 영상, 포스터 등 9,619건의 기록물로 구성돼 있어요.
- 우리나라 산림청은 1970년대부터 추진된 이 사업의 결과로 “1950년대에 헥타르 당 5.6㎥에 불과하던 나무의 양이 2020년에는 헥타르 당 165㎥로 증가해 지금의 푸른 숲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해요.
- 한편, 민·관의 협력을 통해 이룩한 이러한 성과는 개발도상국 대상 ODA사업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사막화 방지, 생태계 복원 등의 국제적 이슈에 대응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어 이번 등재는 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 교수님, 먼저 이번 등재를 위해 애써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번 기록물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6·25전쟁 후 황폐화된 국토에 민·관이 협력하여 성공적인 국가 재건을 이뤄낸 산림녹화 경험이 담긴 자료”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자료들이 포함돼 있는지, 흥미로운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산림녹화 기록물에 포함된 기록물들은 1945년 해방이후 2000년 전까지 산림청 및 그 산하 기관인 영림서, 국유림 관리소, 중앙부처와 지자체를 포함한 공공기관, 산림조합과 산림계, 양묘협회 및 임업 관련 학회와 연구회 등이 작성한 기록물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형태상으로는 문서(관보, 법령, 국무회의록, 산림청 공문 등), 보고서, 조림대장, 책자, 직무교육자료, 연수생 수기, 동영상, 포스터, 사진, 우표, 표창장, 업무일지 등도 포함되었어요. 그중에서 흥미로운 기록물을 뽑아 본다면 복지조림조합 관련 서류를 들 수 있겠습니다. 강원도는 면적 대비 산림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곳(83%)인데요. 여기에는 1974년 박종성 당시 강원도지사가 도민들의 조림을 독려하기 위해 복지조림조합을 결성한 것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어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결성한 이 조합을 통해 1구좌당 1,000원씩 총 6,506구좌를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강원도 내 200헥타르의 땅에 6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어요. 30년 후에는 다 자란 나무들의 목재를 판매하여 구좌당 38,000원의 수익을 배당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어요. 이는 국내 유일한 공무원 복지조림의 성공 사례에 해당해요.
+ 한국산림정책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1만여 건에 달하는 관련 기록물들을 직접 모으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이번 등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등재 신청이 반려되기도 하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는지, 등재 성공으로 이어진 핵심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내 기록물들이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 공공단체, 기념사업회, 혹은 후원회 등의 재정 지원을 받은 반면에, 이번 등재 과정을 주관한 한국산림정책연구회는 소규모 산림청 연구용역 이외에는 등재추진위원회의 제반 경비를 모두 직접 성금을 모아서 충당했어요.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산림청 퇴직공무원들로 구성된 30여 명의 추진위원들이 모두 무보수 재능기부로 9년간 봉사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등재 신청은 ‘정부 주도 기록물이 대부분이고 온국민이 식수에 참여한 민관협동사업을 뒷받침하는 기록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받으면서 채택되지 못했는데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산림조합과 마을마다 결성된 지역공동체에 해당하는 산림계를 통해 관련 기록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민초조림’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어요. 또 한 가지의 성공 요인은 바로 ‘거버넌스’예요. 산림 조성을 위해서는 당시 30만 가구(전체 농촌인구의 13% 해당)에 달하던 화전민(산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짓는 사람)을 지원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그래서 정부는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화전민을 분류하고, 화전민에게 생계수단을 마련해 주기 위해 영농자금 융자와 영농기술을 전수하며, 도시 이주민에게 정착비를 지불하고 직업을 알선해 주는 등의 일을 진행했어요. 그 내용이 ‘화전정리업무지침서’를 통해 확인되었고, 이는 반세기 전에 보여준 거버넌스의 모범사례에 해당합니다.
+ 사실 장년층 이상 세대에게는 과거엔 공휴일이었던 식목일날 전국에서 열렸던 행사라든지 나무심기 표어나 노래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이러한 운동은 매우 생소할 것 같습니다. 산림녹화사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고 있는 효과와 의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의 경제발전과 산림녹화는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출발하여 기성세대가 피와 땀으로 이룩한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청년들은 휴전 직후의 배고픔과 처참하게 헐벗은 민둥산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부모 세대가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루고 금수강산을 되찾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저는 다음 세대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그 당시의 자조와 협동정신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 세대들의 노력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우리는 앞으로 숲을 잘 가꾸어야 해요. 전 세계의 산림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국이 보여주었던 지구 살리기 운동의 모범, 이것을 잘 이어받아 우리 환경을 지키는 데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 산림녹화사업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조림사업의 성공 사례로서도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 국민을 동원하는 이 정도의 강력한 정책이 앞으로 다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산림녹화 정책을 검토할 다른 나라, 혹은 우리 이후 세대들이 이 기록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 그리고 반면교사로 삼을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국의 산림녹화는 비록 정부 주도로 수행되었지만, 전 국민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주면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산림계가 큰 역할을 했죠. 산림자원과 같은 공유자원은 그냥 방치할 경우 각 개인이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갈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마을마다 자치적으로 결성된 지역공동체에 해당하는 산림계(山林契)를 결성하여 규약과 벌칙을 만들어 이를 준수하면서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했고, 연료채취 질서를 유지하고 목재자급을 위한 지속적 자원관리도 이루어졌어요. 이러한 사례는 공동자원의 이용에 대한 규칙과 실행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앨리너 오스트롬 교수의 연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안한 ‘보편적인 지역공동체’가 바로 산림계에 해당하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이런 부분은 다른 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이지요.
+ 이번 기록유산 등재와는 별개로, 이렇게 큰 공을 들여 푸르게 만든 우리나라의 산들이 매년 큰 산불로 인해 계속 소실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앞으로의 조림사업과 우리나라 산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산불이 발생한 지역에도 다시 소나무를 심어 왔어요. 그런데 소나무는 쉽게 불이 붙는 송진을 많이 가지고 있어 산불이 발생하면 대형 산불로 크게 퍼질 우려가 큽니다. 또한 소나무는 본래 그늘에서 살 수 없는 양수(陽樹)이기 때문에, 일단 숲이 우거지면 그 밑에서 어린 소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생태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겨울 가뭄에 쉽게 말라죽는 수종이라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에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어요. 따라서 이제부터는 내화성이 있는 활엽수 중심으로 조림 정책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밖에도 우거진 숲에서 적기에 솎아베기(간벌)를 실시함으로써 낙엽 분해를 촉진하여 불이 확산되게 만드는 재료를 미리 제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세계 각국의 소중한 기록유산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는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MOW)’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쟁과 사회적 혼란, 자원 부족 등으로 인해 훼손되거나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수많은 기록물들을 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기록유산들이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류 공동의 자산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그 내용을 누구나 차별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2025년 기준 20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웹사이트에서 확인해 보세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