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사대화는 한국과 일본의 교사가 양국 교육 현장 방문을 통해 교육 현안을 이해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가 한국의 교육부와 일본의 문부과학성의 후원으로 2001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어느새 25년째를 맞은 이 사업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양국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사람들의 교류를 멈춰세웠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크고 작은 부침에도 불구하고 중단 없이 지속된 한-일간 최장 교사교류 사업이기도 하다. 2024년 7월 일본 교직원의 한국 방문에 이어 올해 1월에는 한국 교직원이 일본 교육 현장을 찾으면서 성공적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1월 21일부터 26일까지 5박 6일간 일본에서 진행된 ‘한일교사대화: 2025 한국교직원 일본초청연수’에서 단장으로서 방문단을 이끈 김성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의 후기를 전한다.
김성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경남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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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중순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관계자로부터 한국교직원 일본초청연수에 단장으로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수락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거니와, 한일교사대화가 한-일간 사회문화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양국 정부와 민간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학교 방문과 수업 관찰, 교직원과의 대화, 가정방문 등을 통하여 제한적이나마 일본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도 생각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전 연수를 통해 이번 연수에 대한 기본 준비를 해 나가면서 서로 간에 어느 정도 래포(rapport)도 형성할 수 있었던 방문단은 1월 21일 오전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첫날에는 일본에서의 일정 전체에 대한 안내를 전달받았고, 저녁에는 일본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가 주관하는 환영 만찬에도 참석해 일본 문부과학성,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관 관계자 등과 환영 및 감사의 인사를 교환했다. 일본 교육 현장 방문은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방문단은 2개 그룹으로 나누어졌는데, 필자가 속한 A그룹은 22일 오사카 인근 나라현의 교타나베시립 다나베중학교, 23일 오지미나미의무교육학교, 24일 오지기타의무교육학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다나베중학교에서의 하루와 가정방문
교타나베시립 다나베중학교는 교토와 나라, 오사카 사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교타나베시 중심부에 위치한 중학교다. 주택개발 등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학구에 있어서 학생 수가 900여 명, 교직원 수가 70여 명에 이르는 큰 학교였다. 수업은 종이책 교과서와 태블릿을 이용한 전자교과서를 병용하여 이루어지고 있었고, 가끔 교사가 학생에게 질문을 하지만 교사 주도의 설명식으로 진행되었다. 인상적이었던 체험 중 하나는 학교 인근 공민관(公民館)에서의 다도 시간이었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학생들에게 지역 전통을 전수하는 공간이기도 한 공민관에서 어르신들은 방문단에 손수 다과와 차를 대접해 주시면서 다도에 담긴 ‘화경청적(和敬淸寂)의 정신’을 강조했다. 서로 사이좋게 화합하는 마음으로(和),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敬), 청결한 마음으로(淸), 평온한 마음으로(寂) 차를 마신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는 교실에서 학생, 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오후에는 우리 방문단이 한국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일본 중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하는 놀이를 함께 했고, 학생들과의 일과가 끝난 후에는 다나베중학교 선생님들과 배구대회를 하면서 상호 유대감을 높였다.
저녁에는 다나베중학교 2학년 부장교사인 하지메 하세가와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했다. 하세가와 선생님의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교사로서 학생에게 헌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일본에서는 교사들이 초과수당 없이도 정규수업 이외에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교사이기 때문이란다. 일본에서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하여 엄격하게 지도한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에 가져올 수 없고, 수업 중 활용하는 태블릿으로 딴짓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면서도 디지털 기기의 도움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도를 높여 가면서 가정방문이 마무리되었다. 꽉 찬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것은 밤 10시였지만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 학교 현장을 방문해 이웃 나라의 교육 현실을 알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으리라.
의무교육학교에서 목격한 일본 교육의 새로운 실험
23일과 24일에는 오지정교육위원회가 세운 오오지미나미의무교육학교와 오오지키타의무교육학교를 방문하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의무교육학교는 초등학교 6년 과정과 중학교 3년 과정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합 학교이다. 소위 ‘중 1 갭(gap)’이라 불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와 분리된 중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단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물리적으로만 통합한 것이 아니라 전체 9년 과정을 재구조화함으로써 혁신적인 학교 모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에서 시작된 의무교육학교는 2016년 법적으로 제도화된 뒤 현재 일본 전역에서 150여개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학생 발달단계에 따라 1학년부터 4학년을 습득기, 5학년에서부터 7학년을 충실기, 8학년에서 9학년을 발달기 등으로 구분 및 연계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두 의무교육학교는 모두 2022년에 개교하였다. 학교는 수영장, 전통적 개념을 뛰어넘는 체육관, 보건실, 미디어센터, 특별교실, 상담실, 과학실, 층별 개방 공간 등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시설의 구성과 배치도 학생 친화적이었다. 교실은 사실상 개방 공간으로, 교실과 복도 사이 출입문과 창문이 모두 투명유리로 되어 있었고 창문이 낮아 교실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생회 활동이 활발하였다. 우리에게 학교 소개를 주도한 것도 학생회였고, 이를 특정한 학생이 맡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학생회 간부나 특정 학년 학생 모두가 나누어 진행하였다. 학교 행사에서 소외되는 이 없이 가능한 한 많은 학생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학기 중에는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서로 친숙한 관계를 맺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점에서도 의무교육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단순한 물리적 통합을 이룬 학교가 아니라, 교육적 통합을 이룬 학교라고 하기에 충분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교는 학생회를 통하여 학생들로부터 학생활동과 학교 행사에 관하여 의견을 종종 듣는데, 반면에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 과정에 대하여 의사결정자로서 참여하는 것은 많지 않아 보였다. 학부모는 운동회, 학예회 등 학교 행사 때 학교가 요청하는 것에 대한 지원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양국의 교육자들이 함께 꾸는 꿈
25일에는 4박 5일 간의 일본 학교 방문을 마무리하는 특강과 한일 교사 간 교류 대화시간을 가졌다. 오전 특강은 온라인으로 실시되었는데, 전 오카야마 대학 부교수이면서 ‘ALL HEROs’ 합동회사 대표인 나카야마 요시카즈가 ‘비인지 능력과 인지 능력을 함께 키우는 학교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 따르면 비인지 능력은 ‘보이지 않는 학력’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자신을 유지·통제하는 힘, 자신을 변화·향상시키는 힘, 타인과 협동하고 협력하는 힘이 포함된다. 이러한 비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때 학생의 인지 능력의 향상도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학교 교육이 길러야 할 핵심 역량으로 비인지 능력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학교 밖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오후에는 오전에 있었던 특강 내용 및 ‘행복한 학교’를 주제로 참석자들 간 대화와 토론이 있었다. 다만 이 시간은 주어진 주제 외에도 한국 교직원들이 일본 교직원들에게 방문 기간 중 생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시간일 텐데, 그러한 부분을 채울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차후에는 현장의 분위기와 맥락을 더 잘 반영한 대화 시간 운영을 통해 일본을 찾은 한국 방문단이 일본의 교육과 교육제도 운영, 일본 교육의 지향 등에 관하여 보다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한국 교직원 방문단은 사물놀이와 합창 공연으로 일본 측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이 때 불렀던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 하네/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가사가 감동적이었다. 특히 이 가사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함께 부른 부분에서는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이번 방문이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앎’이 있는 연수임을 공식화하는 수료증 수여식과 함께 일본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수료증 수여식에서 필자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역사와 전통과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학교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있어서는 사실상 동일한 과제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더 나은 학교가 단지 즐겁기만 한 학교가 아니라 의미 있는 배움이 있는 학교라는 것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여러 기관과 관계자 여러분의 꼼꼼한 준비와 환대 덕분에 이번 방문이 일본 교육을 이해하고 민간 차원에서 상호 이해와 존중, 유대를 강화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학교 교육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better society)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인간을 기른다는 지향성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과 방법은 본질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 일본 학교 방문을 통하여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모습, 낯설 듯하지만 익숙한 모습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다양성을 확인하였다. 다양성은 외부자적인 관점(etic approach)에서 비교하거나 좋다거나 나쁘다고 평가하거나 우열을 가릴 대상이 아니라, 내부자적 관점(emic approach)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대상일 따름이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이번 방문을 통하여 관찰하고 경험하고 확인한 일본 교육을 우리 교육과 비교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고자 했다. 필자만이 아니라 한국교직원 방문단 모두에게 이번 일본 방문 연수는 문헌이나 전언(傳言)으로만 파악했던 일본의 학교 문화를 조금 더 알고 이해하게 해 준 소중한 참여관찰의 기회였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일본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 방문 학교와 가정의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서현숙 지적연대본부장과 권송 선임전문관의 헌신적인 도움에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