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난 지금, 연초에 세운 야심찬 한 해 계획은 현재까지 잘 지켜지고 있나요? 작심삼일에 그쳤다고 실망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설령 계획이 벌써 틀어졌더라도 실망하지는 마세요. 단 하루를 내다보는 계획이라도 그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기에, 우리는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다른 계획을 세워볼 수 있으니까요. “내일 봐”라는 간단한 인삿말조차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주장하는 어느 학자의 말을 듣고 나면, 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미래는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거라 기대해도 될 테니까요.
+ 미래를 상상하는 인간만의 능력
이런 말을 한 사람은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Daniel S. Milo)입니다.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언어와 문자, 불의 이용, 농경, 혹은 산업혁명을 꼽을 수도 있지만, 밀로 교수는 ‘내일’을 상상하고 논의하고 계획하는 능력이야말로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발명이라 주장합니다. 저서에서 그는 “내일 보자”는 말을 한 인간이 “3주 후에 돌아올게”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5개년 계획은 20세기에 처음 등장했으며, 100년을 내다보는 계획은 21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2330년쯤 되면 인류는 1000년을 내다보는 예측을 하게 되리라 전망했죠.
그의 과감한 주장을 전적으로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능력을 인간만이 갖추었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동면을 앞둔 동물들이 가을에 미리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등 자연계에서도 앞날을 준비하는 행동을 적지 않게 관찰할 수 있지만, 이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고 대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 주기에 따른 적응이라 보는 게 더 타당하죠. 반면에 인간은 미래에 닥칠 수많은 가능성을 상정해 보면서 때로는 우려를, 때로는 희망을 품고 훗날을 ‘준비’합니다. 오늘날 그러한 준비의 범위는 개인 차원을 아득히 넘어 사회, 국가, 전 인류, 나아가 사후세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법과 종교에서부터 정부와 시장경제, 각종 조직과 단체 등 현재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주요 요소들은 모두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 전체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안하고 개선하고 발전시켜 온 산물임을 감안하면, 인간은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여전히 유효한가?
인간이 한두 달, 1-2년의 기간을 넘어 먼 미래를 본격적으로 상상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던 만성적 식량 부족이나 질병, 주기적인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과학기술 발전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으면서였으니까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연이어 일어난 17-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라고 부르듯, 역사상 처음으로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떨쳐낸 인류는 자신감을 갖고 이전보다 훨씬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모두가 풍족하고 편안하게 잘 살게 되리라는 기대, 역사는 차근차근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8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맬서스는 인류가 풍요 속 인구 폭발을 끝내 감당해낼 수 없으리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다음 세기에 마르크스는 세상의 진보가 결코 모두의 삶을 나아지게 해 주지 않는다고 선언했죠. 제국주의의 창궐과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20세기 초,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다줄 미래가 인간 존엄성이 말살된 디스토피아일 것이라 경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한 세기가 흐른 21세기,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팬데믹은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대중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탈진실’의 세상 속에서 우리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작동할까요? 무엇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와 환경 파괴 문제를, 우리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함께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낙관적인 대답과 비관적인 대답이 혼재하는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으로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으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트렌드를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미래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적극적으로 익혀야 합니다. 오늘의 세상이 지난날 우리의 선택 위에 세워졌듯, 내일의 세상도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으로 빚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미래를 상상하는 역량, 미래문해
미래를 상상하는 게 ‘익히고 배워야 할 능력’이라는 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분명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유엔 체제 내에서 ‘생각의 실험실’ 역할을 자처해 온 유네스코는 2012년부터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해 왔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능력, 즉 미래를 상상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보면서 현재의 의사결정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에 ‘미래문해(Futures Literacy)’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래’의 복수형 단어(futures)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하는 문해력(literacy)이 붙은 용어이지요. 이렇게 연결된 두 단어가 뜻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18세기 이후 대중들이 문자와 셈하기를 익힘으로써 축적할 수 있었던 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이전보다 풍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었듯, 21세기의 우리는 다양하게 상상해 본 미래 모습 속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요소와 방법론을 찾아내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은, 다양한 미래를 상상하고 탐구해 보는 일을 ‘능력’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것을 특정한 사람이나 일부 배운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오해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다만 미래문해 연구를 이끌어 온 노르웨이 과학기술대의 리엘 밀러(Riel Miller) 교수 등은 ‘20세기 이후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미래 시나리오를 예측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각 개인이 기존에 정의된 패러다임을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여지는 오히려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을 오히려 더 편협하게 만들었다’고 오늘날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를 진단합니다. 달리 말해 급격히 빨라진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의 속도에 우리 각자는 점점 피로감을 느꼈고, 그것이 장기적 보상보다는 단기적 보상의 도파민을 선호하는 우리 뇌의 편향성과 결부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외주화’해버렸다는 뜻입니다. 미래문해는 그렇게 남에게 위탁해버린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 현재가 미래를 돕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을 때, 미래는 그저 우리에게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활용할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미래문해의 요지입니다. 현재의 우리가 미래를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때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던지는 질문도 달라지게 되겠죠. 예컨대 미래 예측이 ‘지구 기온이 몇 도 높아지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거야’에서 머무를 때, 미래문해적 접근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대책과 시스템이 기후위기를 막는 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문해적 시각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깊이 침투해 인간성이 위협받는 세상’을 예측하기에 앞서,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며, 인공지능이 여기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겁니다. 더 포용적이고 새로운 교육의 미래도, 더 평화롭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도, 우리가 다양하게 상상해 볼 미래 모습 속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현재는 미래를 도울 수 있는가?
오늘의 우리가 미래의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소설을 쓰며 자신에게 던졌다고 하는 질문들을 이렇게 한 시제씩 미래로 바꾸어 써 보면, 그것은 미래문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놀랍도록 비슷해집니다. 한강 작가는 잔혹한 폭력의 역사 속에서도 끝내 스러지지 않았던 숭고한 인간애를 담은 작품으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했는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문해는 각자의 상상력과 현재에 대한 자유로운 문제 제기를 통해 우리가 원치 않는 미래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양한 상상과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해 보기 위해 유네스코는 계속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정해진 미래를 기다리는 대신, 더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지금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이슈쿠키 더보기 I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미래담론 연구
유네스코의 지원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면서 교육과 문화를 통해 사회 발전을 일구어 온 우리나라는 미래에 대한 상상, 더 나아질 수 있고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과 노력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준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역동적이며 개개인의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위기 대처 능력도 뛰어난 편이기에, 우리나라는 20세기에 교육과 문해의 기적을 이룩했듯 21세기에도 미래문해의 실험장이자 선도 국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2023년부터 ‘유네스코 미래 담론 연구’를 해 오면서 미래에 대한 다양한 길과 대안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요청하는 전문가들의 제안은 무엇인지,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과 기대는 어떠한지 궁금하다면 앞으로도 이어질 연구와 논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