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네스코로 돌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의 이번 결정을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다자주의로의 진심어린 복귀 선언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과 유네스코 사이에 일어났던 지난 두 번의 이별과 두 번의 복귀를 복기해 볼 때, 우리가 가장 뚜렷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국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대의와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골목대장에게 돌을 던지랴
다른 모든 국제기구 및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유네스코라는 조직의 가장 강력한 후원국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진 유네스코의 37개 창립국 중 하나이며, 회원국별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산출되는 정규 분담금 규모는 유네스코 전체 예산의 약 22%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다. ‘하드파워’에서 더는 견줄 상대가 없는 미국에 있어서도 유네스코의 활용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교육과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이라는 유네스코의 활동 영역은 ‘소프트파워’의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역사 전문가인 제리 푸반츠(Jerry Pubantz)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2017년 『타임』지에 실린 기사에서 “2차대전 직후 유네스코 창립을 주도했던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학계에서는 ‘탈나치화’가 진행중이었고, 미국 역시 유네스코가 ‘세계대전의 교훈’을 후대에 가르치고 자유 세계의 목소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면서 이것이 미국이 초창기 유네스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서로 잘 맞을 것 같았던 미국과 유네스코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1945년 37개국으로 출발한 유네스코의 회원국 수는 2023년 현재 194개국까지 불어났고, 산술적으로 따지면 이는 유네스코 의사결정에서 미국이 갖는 한 표의 가치가 37분의 1에서 194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겪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흥국가들이 대거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선진국 중심이 아닌 더 공정한 세계 질서’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유엔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일어났지만, 유네스코와 달리 안보리 상임이사국 거부권이 주어지는 유엔에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미국의 한 표는 여전히 다른 전체 회원국의 표를 압도할 수 있다.
‘남보다 많은 회비를 분담하면서 내 표의 무게는 그만큼 되지 않는 상황’은 어쩌면 공평한 다자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어 강대국으로서 짊어져야 할 당연한 책임일 수 있다. 문제는 자국의 국익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이를 아까워하지 않고 국익보다 대승적인 선택을 우선시 할 수 있는 정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유네스코 조직을 들끓게 만들었던 ‘신국제정보질서’를 두고 불거진 미국의 반발이 그 예다. 당시 아프리카 세네갈의 아마두 마타르 음보(Amadou Mahtar M’Bow) 사무총장이 이끌던 유네스코에서는 공산권 및 제3세계 회원국을 중심으로 미국 등 선진국 미디어들이 독점한 정보 유통의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 1980년에는 서구 중심의 미디어 권력을 재편해 균형잡힌 정보 유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맥브라이드 보고서」가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제2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발표되기에 이른다. 이 문제가 그저 공정한 정보유통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냉전시대 라이벌이었던 소련의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극심하게 반발했고, 결국 1984년 레이건 행정부는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한다. 당시 상황을 담은 여러 매체들의 기사에서는 평등한 세계 질서를 요구하는 유네스코 내의 움직임에 대한, 외교적 수사로도 덮을 수 없는 미 행정부의 적의와 불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엔 주재 미 대사를 역임한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은 당시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배경에 대해 “돈을 내지 않는 국가들은 투표권을 갖고, 돈을 내는 국가는 투표권이 없다”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유네스코 테이블에 ‘국익’이 있을 때
그렇게 미국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 속에서 유네스코도 재정적·정치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신국제정보질서 논의는 서방 세계의 반발을 넘지 못해 무산됐고, 재정난에 직면한 유네스코는 여러 사업과 조직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이후 공산권이 몰락하고 유네스코의 재정 개혁이 진행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이 탈퇴 명분으로 내세운 문제들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미국은 유네스코 무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대통령학 연구가인 러셀 라일리(Russell L. Riley) 미 버지니아대 교수는 “미국은 이미 냉전의 승자였고,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에 딱히 복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내심 ‘막대한 분담금에 걸맞은 영향력’을 인정받길 원했던 미국으로서는 스스로 유네스코 다자주의 무대로의 복귀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련이 몰락한 세상에 남은 유일의 ‘슈퍼파워’로서 유네스코 밖에서도 아쉬울 게 없었던 미국이 다시 유네스코로 돌아오기로 한 것도 대외 환경이 변하면서 미국의 국익에 유네스코가 필요해졌다는 확신이 선 이후였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지난 후인 2002년 9월 14일, 미국은 유네스코 복귀를 선언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로서는 전 세계에서 벌일 테러와의 전쟁을 앞두고 국제사회로부터 폭넓은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미 외교위원회의 스튜어트 패트릭(Stewart M. Patrick) 선임연구원은 당시 미국이 “유네스코 내의 반미 정서가 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라며 “(테러와의 전쟁을 앞둔) 당시의 미국에 ‘다자주의’를 요구하는 의견을 내놓을 나라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즈음 유네스코에서 논의하던 「문화다양성협약」 역시 미국이 복귀를 결정하도록 만든 또 하나의 관심사였다. 2001년 유네스코는 전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각국의 문화상품을 그저 자유무역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문화다양성선언」을 채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구속력을 갖는 협약을 만들고자 하는 유네스코 내부의 분위기는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 패권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미국으로서 우려가 되는 부분이었다. 헐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자국 문화상품의 유통을 가로막을 수도 있는 그러한 논의를 무산시키기 위해 미국은 유네스코 복귀 이후 사사건건 문화다양성 이슈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2005년 10월 유네스코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됐고,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뿐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 152개국이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한 오늘날까지도 ‘세계 문화의 용광로’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
미국이 「문화다양성협약」에 반대한 것은 세계 최고 경쟁력의 문화 산업을 가진 국가로서 어쩔 수 없는 행보라 하더라도, 해당 협약에 반대표를 던진 나머지 한 국가가 문화상품 수출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이스라엘이었다는 점은 지금 다시 봐도 어색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한없이 가까운 — 그리고 때론 배타적이기까지 한 — 두 나라의 특별한 관계가 유네스코 내부에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가장 복잡한 퍼즐이라 할 수 있는 중동 평화 문제에 임하는 미국에 있어 이스라엘은 언제나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조각’이며, 이러한 경직성은 유네스코에서도 매 순간 미국의 발목을 잡아 왔다. 그 결과가 2011년 이후 미국의 유네스코 분담금 납입 중단, 그리고 2017년의 두 번째 탈퇴 선언이다.
2011년 9월,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 본부에서 35분에 달하는 연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유엔 가입 신청에 분명한 반대를 표시했다. 국가 수반의 유엔 연설 중간에 으레 등장하는 박수를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을 정도로, 평소 ‘아랍의 봄’을 지지하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우선시하던 행보와 모순되는 그의 연설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런 ‘굴욕’을 감당하면서까지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좌절시켰지만, 같은 해 11월에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찬성 107, 반대 14, 기권 52의 결과로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대화와 설득, 포용과 인내 없이 ‘슈퍼파워의 힘’을 발휘하기에 유네스코라는 무대는 지나치게(?) 공평하거나, 혹은 순진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미국은 1990년과 1994년에 각각 통과돼 ‘국제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조직 혹은 단체에 정회원국 자격을 부여하는 유엔 및 그 산하 기구에 자금 지원을 금지’하도록 한 자국 법에 따라 유네스코 분담금 납입을 중단했다. 미국의 분담금 연체액이 약 5억 5천만 달러까지 쌓인 2017년 말, 트럼프 행정부는 “유네스코 내 반이스라엘 편향과 조직의 근본적인 재정비 필요성”을 이유로 들며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했다. 그보다 몇 달 앞서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이 신청한 ‘헤브론/알킬릴 옛 도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자 이스라엘이 극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던 때였다. 등재 결정이 이루어진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이스라엘 대표는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며 “지금 내 아파트 화장실을 고치고 있는 수리공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당신들이 내린 결정보다는 그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 같다”면서 조소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유네스코가 내린 또 하나의 망상적인 결정”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탈퇴 선언이 있은 뒤, 이스라엘도 뒤따라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부상하는 중국, ‘앉을 자리’ 찾아 돌아온 미국
탈퇴 후 복귀까지 18년이 걸렸던 과거와 달리 미국의 이번 탈퇴는 불과 5년 만에 끝이 났다. 2023년 현재 팔레스타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5년 전보다 부드러워졌다고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복귀를 선언한 이유는 단순히 행정부의 교체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 평화분쟁연구소의 어쇽 스웨인(Ashok Swain) 교수는 미국의 복귀 소식을 전한 『프랑스24』의 기사에서 미국의 복귀가 중국을 견제하고 인공지능(AI) 관련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스웨인 교수는 “미국이 떠난 유네스코의 빈자리를 중국이 기꺼이 채워 왔다”면서, 그 사이 유네스코 정규 예산의 최대 분담국이 된 중국이 세계유산위원회 등 유네스코의 대표 사업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을 미국이 계속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지난 2021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인공지능윤리 권고」를 기점으로 더욱 깊은 수준의 다자 협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인공지능 분야의 규칙과 규제를 마련하는 과정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해당 분야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지분이 도전을 받게 될 것”을 특히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도 이와 같은 시선을 애써 회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2022년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의회에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를 위한 예산 편성을 요청하면서 “우리가 유네스코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유네스코에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네스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인공지능에 관한 규칙과 규범과 기준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어야 된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의 유네스코 분담금 납입을 가로막는 법안이 수정되거나 폐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국익을 내세워 일단 의회로부터 2025년 9월 30일까지 해당 법안의 적용을 유예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곧 앞으로 세계유산이나 인공지능윤리 등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분야에서 자국의 국익이 충분히 관철되지 않은 경우 언제든 이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안에서 다시 미국과 부딪치게 될 중국이 내세울 ‘국익’,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떨어뜨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대립 등 유네스코의 앞날에 폭풍우를 예고하는 요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에서 빠진다는 것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뜻이고 결국 국가의 이익을 잃는다는 뜻”이라며 유네스코 복귀가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넸지만, 프랑스의 『르몽드』는 “불과 2년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극우 민족주의 리더십이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복귀에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유네스코로서는 국익을 위해 언제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준비가 된 회원국들을 붙잡아 둘 방법이란 유네스코의 다자주의 속에 남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들의 국익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의 정치 지형을 갈수록 양극화시키고 있는 저널리즘의 위기와 허위정보의 범람, 언제든 막대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테러리즘과 극단적 폭력주의, 그리고 전 인류의 기회 혹은 재앙일 수 있는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에 올바르게 대응하는 일은 지금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자 모두의 국익이며, 무엇보다 유네스코에서 잘 다룰 수 있는 전문 영역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기 위해 일단 다 함께 마주앉아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 그것이 순진한 낭만이 아니라 모두의 국익을 보장하는 길임을 설득하는 무거운 임무가 지금 다시 출발하는 유네스코 앞에 놓여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