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글로벌 미디어 · 정보 리터러시 주간
유네스코와 한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20 글로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주간’ 대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준비에 힘써온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커뮤니케이션팀. 우여곡절 끝에 큰 행사를 무사히 치러낸 후일담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살면서 힘들 때 아무 소원이나 빌지 말자. 국제회의 개최 실무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다보니 좀 재밌는 회의를 기획할 수 있게 해달라고 평소에 말하고 다녔는데, ‘기출변형’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속 국제회의 개최가 나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달고나 커피를 수천 번 휘핑하며 이 바이러스가 지나가길 기다렸지만, 인생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결국 의지의 한국인들은 코로나 시대에 국제회의를 온라인 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가상의 회의장을 만들어냈고, 그곳에 회의 참관, 전시 감상, 네트워킹 등 오프라인 행사의 주요 기능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천신만고의 과정을 거쳐 10월 마지막주에 시작된 2020년 글로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IL) 주간은 ‘디스인포데믹(disinfodemic)에 저항하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MIL’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넘쳐나는 허위정보에 맞서 MIL을 강화할 방법을 모색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싱취 유네스코 부사무총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MIL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량임을 재차 강조했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헨리 젠킨스 교수는 “오늘날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참여형’으로 변화해, 창조, 협력, 그리고 연결의 고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젠킨스 교수는 K팝 팬덤이 소셜 미디어를 역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유세에 훼방을 놓은 사례를 예로 들며, 소위 Z세대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이미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는 내용의 흥미로운 기조강연을 들려 주었다.
이번에 특별히 마련된 가상 콘퍼런스 홀에서는 총 9개의 세션이 더 진행되었다. MIL과 민주주의, 소셜 미디어, 평등, 청년 참여 등 국제 사회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MIL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MIL을 이용해 어떤 방식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전세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시차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오후 3시, 누군가에게는 새벽 2시에 열린 회의였지만, MIL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역량이라는 사실에 모두의 의견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올해 글로벌 MIL 주간의 주최국으로서 한국은 우리 사회 내의 MIL 현황에 대한 특별 세션도 진행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우리나라의 자신감을 믿고 한국 세션만큼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했고, 다행히 이 행사가 있는 주에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로 내려가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무사히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먼저 발표자로 나선 국내 미디어 리터러시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안정임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MIL 교육 사례를 소개하고, 특히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대상의 교육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 계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디지털 포용의 고민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으며 공감을 얻었다. 이어 박유신 서울석관초등학교 교사는 코로나19에 맞서기 위해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가 제작한 ‘미디어리터러시 백신’을 소개하고, 온라인 개학 이후 학교에서 다양한 앱과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보편적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또한 질병관리청의 고재영 대변인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피력하는 한편, 허위정보에 맞선 질병관리청의 다양한 노력을 소개했다. 끝으로 국민대학교 조수진 교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가 빠질 수 없는 요소임을 강조하고, 남북이 상호 소통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통해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 다른 시간대와 기술적 제약 속에서 온라인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서 영감을 받는 참가자들을 보며, 소통과 협력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한 가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도 이왕이면, 코로나19를 극복한 세상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박다혜 커뮤니케이션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