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성공과 출세가 아니라 생존과 인권, 그리고 지속가능발전의 측면에서 왜 얼마나 중요한지 머릿속에 그려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유네스코가 부르키나파소, 그리스, 과테말라, 인도에서 뽑은 네 사람의 이야기는 각각 성평등, 이주민, 평생교육,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교육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 지난 7-8월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네스코의 전시 ‘교육이 삶을 바꾼다’(Education Transforms Lives)에서 선보인 사진 작품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도 유네스코가 힘을 쏟을 교육 분야 우선순위들을 소개한다.
부르키나파소
라치다토우 사나(Rachidatou Sana)와 아와 트라오레(Awa Traore)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부르키나파소 제2의 도시인 보보-디오울라소(Bobo-Dioulasso)에 산다. 남성에 비해 여성 문해율이 형편없이 낮으며 여성에게 좀처럼 교육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이 두 여성은 교육을 받고 있는 운 좋은 여성들 중 하나다.
학교에서 빼어난 성적을 자랑하는 라치다토우는 수학 문제 풀이를 가장 좋아하지만, 자신이 공부를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수학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알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다른 여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며 글자를 모르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된 집안일과 직장일, 그리고 자신의 공부를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바로 ‘공정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엄마가 평생 가 보지 못했던 학교에 매일 다닐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라는 라치다토우의 꿈은 장차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한편, 아와는 아침부터 밤까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스물 한 살의 여성이다. 고향인 반존의 마을에서 단 하루도 학교에 가 보지 못한 채 성장한 아와는 자신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와는 고향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보보-디오울라소의 삼촌 댁으로 와 가사일을 도맡는 대신 학교에 갈 기회를 얻었다. 매일 오후 6시, 고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약 30분 간 예습과 복습을 한 뒤 아와는 6시 30분에 문해 교실을 찾는다. 또래보다 진학이 한참 늦은 아와는 자신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배우고 나서도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의료 분야에서 자기 꿈을 펼칠 기반을 닦겠다는 결심만큼은 확고하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이렇게 얻은 두 번째 기회를 절대 낭비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스
24살의 샤흐나즈 카리미(Shahnaz Karimi)와 그녀의 남편 나시르 라소울리(Nasir Rasouli), 8살 난 아들 마틴은 2018년 8월에 그리스 동부 에게해의 레스보스(Lesbos) 섬에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 헤랏(Herat) 출신의 이 가족에게 교육이란 낯선 땅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지극히 소박한 희망을 실현케 해 주는 열쇠다. 2015년 이후 레스보스 섬은 유럽을 향하는 난민들의 주요 관문이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난민 캠프가 위치한 이 섬으로 거의 매일 난민들을 가득 실은 보트가 들어온다. 샤흐나즈와 나시르는 고국에서 전문 기술을 갖고 있었다. 샤흐나즈는 미용사였고 나시르는 화가이자 장식 전문가였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영어와 미술 수업을 들으며 새 터전에서도 자신들의 재능을 펼칠 방법을 찾고 있다. 부모가 영어와 미술 수업을 듣는 동안 초등학교에 다니는 마틴은 벌써 엄마 아빠보다 나은 영어 실력을 자랑하며 장차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샤흐나즈는 “이 캠프에서 공부를 할 방법이 없었다면 마틴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뒤쳐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학업 내용의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학업의 지속성과 이동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는「고등교육 자격의 인정에 관한 국제 협약」(Global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of Higher Education Qualifications)이 지난달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됨으로써 라스울리 가족 같은 사람들이 새 터전에서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는 데 더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레스보스 섬은 이미 전 생애를 아우르는 학습 문화 조성을 목표로 하는 유네스코 글로벌학습도시네트워크(UNESCO Global Network of Learning Cities)에 소속돼 있다.
과테말라
마가리타 펠리코(Margarita Pelico) 씨는 남성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여성들은 바느질을 하는 과테말라의 시골 도시인 토토니카판(Totonicapán)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아홉 가족에서 자랐다. 학교 바로 옆에 살았던 마가리타에게 매일 아침마다 수업을 들으러 등교하는 자기 또래 친구들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자 아이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믿고있던 부모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가 문을 닫고 말았다. 13살 때 마가리타는 학업 기회를 놓친 성인을 위한 무료 강의를 찾았고, 이번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가리타는 이곳에 다니면서 선생님과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덧셈과 뺄셈을, 바느질을 하면서 산수를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현재 마가리타는 두 개의 자수 및 방직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업과 지식, 기술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가리타는 공장 운영 틈틈이 짬을 내 주변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열심이다.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살려 직업훈련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베틀 다루는 법, 바구니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른 여성들을 돕는 일 한편으로 요즘 마가리타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은 바로 다섯 살 난 손자를 등교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하지 못했던 그 공부를 하기 위해, 손자는 오늘도 그 옛날 마가리타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그 학교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인도
프라시바 발라크뤼시난(Prathibha Balakrishnan)은 인도 닐기리스 생물권보전지역(Nilgiris Biosphere Reserve) 내의 산악 지역 원주민인 베타 카룸바(Betta Karumba) 사람들을 대상으로 숲의 중요성 및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다. 프라시바는 아이들에게 먹을 수 있는 야생 시금치를 판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한편, 고구마나 얌, 오렌지, 구아바 같은 지역 고유종들을 길러 전통 채집 생활을 다양화하는 일도 돕는다. 2008년에 프라시바가 여기 왔을 때 이곳은 전기도, 교육의 혜택도 없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6달만 베타 카룸바 사람들을 가르칠 생각이었던 것이 올해로 벌써 11년째가 되었다고 한다. 바디치(Badichi)라는 44살의 여성 부족장은 이곳에서 프라시바가 특별히 의지하는 사람이다. 7명의 자녀를 둔 바디치는 비록 자신은 교육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지만 교육의 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자녀들과 손자인 아니타의 학비까지 대기 위해 가정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산악 지역에 고립돼 살며 차와 커피를 재배하는 베타 카룸바 부족의 문맹률은 매우 높다. 프라시바가 이들에게 문해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는 바디치의 도움이 컸다. 부족의 신뢰를 얻어낸 두 사람은 지방 정부에 청원을 해 마을까지 이어지는 도로와 전기 공사, 그리고 초등학교를 세우는 일까지 성공했다. 바디치의 딸들인 시타와 바산티는 프라시바의 제자들로, 프라시바에게는 부족 언어를 가르쳐 주며 호의에 보답하고 있다. 특히 세 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19살의 바산티는 인근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해 이 마을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자신과 이 마을 사람들을 변화시킨 교육에 대해 프라시바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에게 일생의 선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