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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유네스코 칼럼 / 문해는 글자 너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작성일 2017.09.27
담당부서 커뮤니케이션팀 분류 인문사회과학
[736] 유네스코 칼럼

문해는 글자 너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몇 년 전 파키스탄의 하피자바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하피자바드는 펀잡 주의 수도인 라호르에서 두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비문해 여성들을 위한 문해교실을 둘러보고, 이 지역 문해교실의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문해교실의 뒷모습

사업 평가를 위한 여느 방문일정처럼 준비된 곳으로 인도되고, 그곳에서 방문자를 환영하는 한 무리의 여성 학습자들을 볼 수 있었다. 방문자들은 뒷자리에서 문해교실을 가득 채운 여성들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칠판에 쓰인 글자를 따라 읽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검정 눈동자조차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듯, 앉아 있는 여성들은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줍은 듯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다. 더욱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여성들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어, 이들의 얼굴 표정은 볼 수 없었고 이들이 따라 읽는 가녀린 소리만 간간이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곳에 나와 글자를 배운다는 점, 글자를 배워 좀 더 나은 사회를 알게 되었다는 점, 이들을 통해 지역 사회의 여성 권한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현지 문해교육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힘주어 전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였던 여성 학습자들은그리고어떻게그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일까? 굳이 질문할 필요조차 없는 물음인가? 아니, 배움의 기회를 거저 준다는데 왜 그걸 굳이 따져 묻는가? 글쎄, 우리는 당연하게 학교가 지어지고, 학교의 교실에 학습교구들이 들어차면 그 자리를 학생들이 채울 것이라고 가정하듯, 문해교실이 열리면 그곳에 비문해자들이 차고 넘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하게 글자 배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글자를 몰랐던 자신의 삶을 떠나 글자를 아는 세계로 이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제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비문해가 만연한 농촌지역, 특히 성인 여성들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기대다. 앞서 이야기했던 파키스탄의 농촌지역인 하피자바드의 문해율은 60%가 채 안 된다. 안타깝게도 성인 여성들의 문해율은 겨우 20%가 될까 할 정도다. 파키스탄의 교육지표는 전체적으로 낮은 편인데, 학령기 아동의 학교취학률보다도 성인들의 문해 수준은 훨씬 낮은 편이다. 따라서 이들이 모여 있는 집 한 켠의 문해교실은 당연한 장면이 아닌, 전혀 낯선, 그리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글자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글자를 배우겠다고 발걸음을 옮겨 문해교실을 찾는 누군가의 행위는 대단히 용감하고, 더 나아가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실제 하피자바드의 문해교실을 찾는 여성문해자들은 대상이 되는 여성 10명 중 기껏해야 1~2명에 해당되고, 이마저도 문해교실에 나오기까지 최소 3주의 설득 혹은 그보다 오랜 서너 달의 잦은 방문에 따른 결과이다.

 

 

왜 배우느냐고 묻거든...

설마하니 글자 배우는 것이 도대체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이렇게 위험하고 발걸음을 떼기 어려운 것이란 말인가? 특정 지역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지역의 여성들은 문해교실에 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남편에게 맞고, 시부모에게 버림받고, 동네의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쓸데없이 왜 배우느냐는 것이 이들이 손가락질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문해교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기초적인 글자를 배우고, 단어를 읽게 되고, 또 문장을 읽게 되면서 배움을 쉬 내려놓지 않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글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은 글자를 배워 읽고 쓰는 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성장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살아가는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문해는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또 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점을 알도록 하는 배움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한 사람의 삶에 글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도, 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실에 모여 단시간에 글자를 익혔는지를 나타내는 숫자로 판단하기 어렵다. 성인문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육자들은 성인 학습자 한 명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힘주어 강조한다. 그래서 문해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주체적인 인간이 되도록 만드는 토대이자 동력이 된다.

 

 

 

 

 

 

 

 

 

 

 

 

 

 

 

 

*유성상 교수는 교육사회학, 교육개발협력 분야의 권위자로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을 나와 미국 UCLA에서 국제비교교육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모교 강단에서 후학을 키우는 한편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발간된 <배움의 조건: 영화 속에 담긴 13가지 교육 이야기>를 비롯해 <국제교육개발협력 이론과 쟁점>(공저) 등 다수의 저서 및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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