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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커버스토리 / 평화와 분쟁의 기로에 선 세계유산 / 우리에게 다시 초심이 필요한 이유
작성일 2017.08.28
담당부서 문화팀 분류 문화

[735] 커버스토리 / 평화와 분쟁의 기로에 선 세계유산

 

우리에게 다시 초심이 필요한 이유

 

 

한 나라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등재되는 과정이공정하고 평화스럽지못하다면, 과연 그렇게 등재된 유산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지닌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을 둘러싸고 종종 불거지고 있는 국가와 민족, 문화 간 갈등은 우리에게 세계유산 제도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지난 7 7일 제41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고 있던 폴란드 크라쿠프 ICE 회의센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이 신청한헤브론 구시가지’(Hebron/Al-Khalil Old Town)의 세계유산목록 등재 여부를 놓고 표결이 진행됐다.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헤브론(아랍어로 알칼릴) 구시가지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속하나 여전히 이스라엘의 점유하에 있는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투표 결과는찬성 12, 반대 3’, 나머지 6개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헤브론 구시가지의 세계유산 등재가 마침내 결정되자 이스라엘 대표단이 격렬히 반발했다. 주유네스코 이스라엘대표부 카멜 샤마-하코헨 대사는 표결 직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며 이렇게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파리의 내 아파트에 있는 배관공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장실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데, 이게 당신들이 방금 내린 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가 세계유산의 등재를, 고장난 화장실을 고치는 것만도 못한 일로 폄하한 배경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뿌리 깊은 민족적-종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헤브론 구시가지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아브라함(이슬람교에선 이브라힘)과 그 후손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어, 이스라엘로서는 헤브론이 팔레스타인의 이름으로 등재되는 데 대해 종교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성지 위에 있는이브라힘 모스크족장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14

세기에 무슬림이 세운 것이다. 상당수 세계 언론은 헤브론 구시가지의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두고팔레스타인이 문화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유산의 가치 자체보다등재 게임의 승패에 보도의 무게중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유혈 충돌의 불씨가 된 유산 등재

정작 우려스러운 일은 헤브론 구시가지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 빚어졌다. <가디언>(The Guardian) 등 해외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 14일 헤브론 성지 인근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이스라엘 경찰 2명과 팔레스타인 젊은이 3명이 사망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철수를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이 계속 충돌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산 등재가 양국 분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갈등을 고조시키는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은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프로그램으로 거두고 있는 크나큰 성과에 비하면 이런 유산 분쟁은 극히 일부의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세계유산 등재로 가난을 극복하고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되고 문화 간 이해 및 대화가 촉진된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2012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협약 40주년을 맞아 펴낸 <세계유산: 국경을 넘어선 혜택>(World Heritage: Benefits Beyond Borders)에는원주민들과 대화하고 이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과 포럼 등을 진행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과의 화해를 일궈낸 재스퍼 국립공원(캐나다) ▲지역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공동체가 함께 발전해가며 빈곤을 완화한 세라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브라질) 등 수많은 스토리가 세계유산의 성공 사례로 소개돼 있다.

이러한 성공 스토리가 세계유산의 성과를 밝히는 빛이라면, 유적의 등재를 둘러싼 갈등은 세계유산의 뒤안길에 드리워진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그림자가 앞으로 더 짙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는 세계유산의 영유권을 두고 국가 간충돌이 빚어진 매우 드문 경우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 보면, 유적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인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진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1996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원폭 돔)을 예로 들어보자.

 

갈등의 역사, 원폭 돔에서 군함도까지

원폭 돔은 1945 8월 원폭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시내에 남아 있던 한 건축물을 당시와 같은 상태로 보존한 것이다. 일본은 등재신청서에서 원폭 돔에 대해인간이 창조한 파괴력에 대한 가장 극명하고 강력한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핵무기의 궁극적 폐기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의 등재 신청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미학적, 건축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전쟁의 유산이 과연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반발이 컸다. 일본의 등재신청서에는 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됐는지, 이 비극을 초래한 배경과 책임 소재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폭 돔은 그 상징성 덕분에 예외적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지만, 한 유산을 놓고 관련 당사국들 간에 역사적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보다 가깝게는,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2015년 세계유산 등재) 중 일부인 군함도’(하시마)를 둘러싼 한일 갈등 역시역사의 단절에서 비롯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인1940년대 조선인이 대규모로 강제징용돼 혹독한 환경에서 해저탄광에 투입돼 강제노동에 희생된 장소다. 처음에 일본은 메이지 산업혁명 시기(1850~1910)에 국한해 등재를 신청한 유산이라는 이유로 군함도에 얽힌어두운 역사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정보센터 설립 등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고 관련 사실을 알리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세계유산목록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일본은 당시 약속한 후속조치의 이행을 위해 올해 12월까지 세계유산센터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본의 이행여부에 따라 갈등이 다시 심화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갈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길, 유산해석

유산을 둘러싼 역사의 단절이나 회피에서 비롯된 갈등은 그간 적잖은 세계유산의 등재 과정에서 불거져온 현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유산 운영의 근거가 되는 세계유산협약에는 유산을 둘러싼 갈등을 직접적으로 해소할 만한 조항이 담겨 있지 않다. 1972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세계유산협약에 따르면 세계유산이란 세계유산위원회가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는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 및 자연 유산(후에 복합유산 추가)’을 의미한다. 여기서 거론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며 현재 및 미래 세대의 전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화/자연의 가치로 규정된다(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 제49).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가 세계유산협약을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인류 모두에게 탁월한 가치를 지닌 유산을 국경을 넘어 보호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다. 즉 유산의 발굴 및 보호, 보존에 세계유산 프로그램의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유산 갈등은 세계유산 프로그램에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유네스코의 이념에 걸맞게, 세계유산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해당사국들 간의 갈등을 사전에 완화하고, 소통과 협력의 기회를 넓힐 수 있는제도적 완충 장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유산해석’(heritage interpretation)을 통해 그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고 있다. 유산해석이란 유산의 예술적, 건축적, 역사적 중요성 등 유산이 지닌 의미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활동과소통을 의미한다.

 

이코모스 산하문화유산 해석·해설 국제위원회’(ICIP) 수 호지(Sue Hodge)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제4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부대행사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유산해석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최근 들어 해석은 공인된 유산 담론(authorized heritage discourse)에서 점차 벗어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산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많은 집단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유산에 깃든 이야기들은 복합적인 것이며, 그저 지배 집단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유산이 하나 이상의 스토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유산에 깃든 많은 역사가 다루기 어렵거나 어둡고 치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 유산해석은 힘겨운 역사를 다룰 것이고, 난민, 전쟁, 재난 후 재건과 같은 현대의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제공할 것입니다.”

 

세계유산위원회 내에서도 유산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논의가 이어졌다. 그 중 가장 주목 받은 것은잠정목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 68항에 대한 개정 논의다. 잠정목록이란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희망하는 회원국들이 작성한 자국의 유산 목록으로 세계유산 등재신청 사전 단계에 있는 예비후보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국제 분쟁을일으킬 소지가 있는 유산 문제 등을 잠정목록 등재 과정에서 해결하기 위해 68항의 개정이 논의됐던 것이다. 하지만 당사국 간의 입장 차이, 세계유산위원회 본연의 임무와 맞지 않다는 견해 등으로 인해 개정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다만, 임시 작업반(Working Party) 회의를 거쳐 지난 7월 제41차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안이 제출된 것은 작은 성과라 평할 만하다. 이 권고안에는논란이 될 만한 유산의 경우 세계유산으로 신청하기 전에 당사국 간 건설적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도록 권장하는내용이 담겨 있다.

 

다시 세계유산위원회로 향하는 시선

이코모스의 유산해석, 작업반의 개정 논의 등은 세계유산을 둘러싼 갈등 완화를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현실적으로 힘을 얻기에는 제도적인 벽이 너무 높은 상황이다. 자문기구인 이코모스나 연구 그룹인 작업반의 평가와 견해는 말 그대로권고수준에 그칠 뿐,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산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할 만한 실질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상당수 세계유산전문가들은 세계유산위원회의쇄신에서 보다 근원적인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대체 유산 갈등과 세계유산위원회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협약 총회에서 선출된 21개 위원국으로 구성되는 의사결정기구(정부간 위원회)로 세계유산기금을 집행하고 세계유산목록 등재 과정에서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다. 바로 이 세계유산 선정 권한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유산을 등재를 앞두고 위원국들을 상대로 뜨거운외교전이 펼쳐지곤 한다. 문제는 세계유산위원회가정치화되면,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과 가치 또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회의에서 한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해당 유산을 사전에 평가한 이코모스(문화유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자연유산) 등 전문기구의 자문을 받는다. 보통의 경우 이때 전문기구의 권고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근래에는 전문기구의 권고와 다르게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위원국의 이해관계 혹은 국가별 외교력과 정치력에 따라 유산의 향배가 달라진 셈이다. 정부간 위원회라는 특성상 세계유산위원회가 치열한 문화외교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각심을 크게 가져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세계유산 등재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은 유산의 가치가 흔들리는 것이며, 세계유산에 대한 신뢰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세계유산협약 40주년 특별회의에서 기쇼 라오(Kishore Rao)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소장은신뢰도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바 있다. 그는정당하고 엄격한 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등재 움직임들이 세계유산협약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도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 회의를 통해 제시된 해결 방안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문화유산이 국가 간 갈등의 소재로 부상하는 문제와 관련해유산을 통한 문화다양성에 대한 상호존중, 관용, 조화, 평화 확산 등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며 이를 바로잡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결국 그가 주장한 해법은 공정하고 원칙에 충실했던, 세계유산협약을 만들 당시의초심으로 돌아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평화의 이념 아래 세계유산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산 갈등은 세계유산에서세계라는 글자를 점점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에우리그들이라는 굵은 선이 그어지게 만든다. 세계유산을 진정한모두를 위한 유산으로 되돌리는 첫 걸음은 어쩌면 유네스코의 초심대로 평화의 방벽을 쌓아야 하는 그곳, 마음에서 시작돼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송영철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

 

 

 

▲ 참고자료

2016년 세계유산해석 국제회의 사례 발표: 인류의 양심과 세계유산(조동준 서울대 교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해석(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실장)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주제연구 보고서(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6)

한국국방연구원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캄보디아-태국 분쟁

가디언 웹사이트(http://goo.gl/PgAV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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