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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호] 커버스토리 / 테러 공포 속, 평화를 꿈꾸는 방법
작성일 2017.05.26
담당부서 커뮤니케이션팀 분류 기획

[732] 커버스토리

테러 공포 속, 평화를 꿈꾸는 방법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는 흔한 유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을 수 없이 외로울 땐 공포영화를 보세요. 그럼 방 안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듭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마음 속에 도사린 공포심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효과를 잘 드러낸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 연이어 뉴스란을 뒤덮는 테러 소식을 접하는 여러분의 마음도 혹시 이와 같지는 않나요? 테러는 폭력과 공포가 바로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휴가철 해외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도 문득 “거기 괜찮을까?” 하고 되묻게 되고, 사람 많은 곳은 어디든 안전하지 않은 것만 같고,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그런 공포감을, 어느새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며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유네스코는 이 같은 우리의 조심스러움에도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즐기고 누리고 여행하라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테러, 일상에 공포를 심다

최근 잇달아 테러가 발생한 파리, 런던, 브뤼셀의 시민에게 ‘지금 안전한 곳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다’라는 대답을 듣기 힘들 것이다. 비단 이들 도시 거주자들뿐 아니라 그런 뉴스를 접한 누구나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소프트 타깃’(soft target; 민간인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의 테러 행위를 뜻하는 말로, 정부기관이나 보안이 철저한 인물 및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하드 타깃'의 반대 개념)에 가해지는 최근의 테러 경향은 전장이 아닌 세계인의 일상 속에 공포를 심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제 지구촌 대다수 사람들은 버스나 비행기를 탈 때,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나 쇼핑몰을 찾을 때 막연한 두려움을 마음 한 켠에서 떨쳐내기가 쉽지 않게 됐다. 2001 9 11일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면서도 테러가 여전히 ‘알카에다 대 미국의 전쟁’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던 대다수의 시민들은, 파리와 니스, 브뤼셀, 코펜하겐, 런던 및 이스탄불에서 잇달아 터진 폭탄 테러를 보며 비로소 테러가 ‘나와 내 이웃에 대한 위협’임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움츠러드는 정부와 시민사회

일반 대중뿐 아니라 국가 역시 테러가 심은 공포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맨 앞에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스트롱맨’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차별 및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해 국내외 많은 반발을 샀던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지난 3월부터 중동 및 북아프리카 8개국에서 출발하는 일부 중동 항공사 비행편에 한해 노트북과 태블릿의 기내 반입을 전면 금지하는 차별적 보안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전자기기 배터리 형태를 활용한 폭발물 위협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조치는 6월부터 유럽발 미국행 항공편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도 검토 중으로, 이에 대해 EU 국가 및 항공사들은 큰 우려와 함께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파리와 니스 등에서 연이은 테러를 겪은 올랑드 정부는 이중국적을 가진 테러범의 프랑스 시민권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을 추진하다 극심한 진통을 겪은 끝에 지난해 3월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다수의 시민과 정치권은 해당 개헌안을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계 유대인들에 대한 시민권 폐지 조치에 비유하며 강력하게 반발해 개헌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해당 안을 적극 지지하는 극우 정당이 선거마다 만만찮은 세를 과시하고 있어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지금껏 테러의 직접 타깃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로, 지난해 3월 정부는 ‘대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움직임들을 분석해 보면 대다수 정부는 더 많은 감청과 더 많은 보안 조치, 그리고 심지어 더 많은 ‘차별’을 소프트 타깃 테러의 주요한 대응책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정말로 더 위험해졌을까?

하지만 테러 대처를 명목으로 각국에서 추진했거나 추진 중인 여러 가지 대책이 본질적으로 소프트 타깃 테러를 막는 데 효과적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스테픈 M. 월트 미 하버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기고문에서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된 지구상 어느 사회에서든 소프트 타깃의 수는 무한에 가깝고, 소프트 타깃은 말 뜻 자체로도 이미 근본적 보호책이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라며 “가능한 모든 것을 ‘하드 타깃’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라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테러 저지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감시를 강화하고 국방 예산을 늘리는 대신 (테러리스트들이 가할 수 있는) 위협의 정도가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음을 시민들에게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덧붙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역시 일련의 테러들로부터 우리가 느끼는 위협의 정도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한다. 그는 <가디언>(The Guardian)에 기고한 글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과 대중에 불러일으키려 하는 공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불균형이 존재한다”며 “(전쟁을 일으켜 사회에 ‘진짜 타격’을 주지 못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그저 영화 같은 스펙터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테러 조직을 일컬어 “장군이 아니라 영화감독처럼 생각하는 집단”이라 칭했다. 그들의 테러가 실재적인 위협보다는 상상의 위협을 키우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통계 역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월트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4~2015년 사이 약 1년간 이라크 및 시리아 국경 바깥에서 소위 ‘이슬람 국가’(IS, Islamic States)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한 사람 수는 약 600명인 데 반해, 같은 기간 미국 내 살인사건 희생자는 1 5000명에 이른다. 월트 교수는 “물론 이 둘 모두 우리에게 편치 않은 숫자이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가까운 위협’인지는 명백하다”고 말했다.

 

 

미디어의 ’프레이밍’, 테러 이후를 좌우한다

일상 속 테러 위협이 실제보다 과장된 것이라면, 시민들은 왜 그토록 큰 우려를 보이는 것일까? 유네스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미디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유네스코는 테러 보도에 뛰어든 언론인을 위해 올해 초 발간한 책 <테러리즘과 미디어: 언론인을 위한 핸드북>(Terrorism and the Media: a Handbook for Journalists)을 내며 테러와 같은 극단적 폭력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방식과 관점을 올바로 정립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테러 발생 직후와 같이 모든 시민들이 위기를 느끼고 격앙된 상태에서 테러 관련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시선이 개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프랑크 라 뤼 유네스코 사무차장보는 책 서문을 통해 “테러리즘과 미디어의 관계는 최악의 경우 ‘그릇된 공생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며 “폭력의 스펙터클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이 “뉴스 주목도를 높이고자 하는 미디어의 관심”으로 인해 더 쉽게 달성될 수도 있음을 꼬집었다.

 

이 책은 또한 미디어의 ‘프레이밍’(framing)이 같은 사건도 대중에게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테러를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에 따라 이 사회가 비난대상을 물색하며 양분될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방법과 이유를 찾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예로 책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9.11 테러 이후 미디어 보도 사례를 분석하며 “당시 다수의 언론이 ‘군사적 대응’을 강조하는 정치인과 ‘복수’를 원하는 시민들의 격앙된 언사를 그대로 퍼 나른 가운데, 몇몇 언론은 미국 내 무슬림과 선량한 아랍인에 대한 긍정적 ‘팩트’를 소개하며 알 카에다에 대항하기 위해 ‘차별’이 아닌 ‘합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프레임을 짰다”고 했다. 테러를 보도하는 미디어가 폭력과 공포의 촉매제가 아닌 ‘관용과 포용의 방화벽’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포에 맞서 일상을 누릴 용기

유발 하라리는 테러리즘을 ‘큰 항아리에 든 동전 한 닢’에 비유했다. 실제 가치에 비해 훨씬 큰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결국 정치인들이 테러리스트가 만든 ‘폭력의 스펙터클’에 대항해 전쟁이나 대규모 보안 강화 같은 ‘역()스펙터클’을 무리해서 만들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미디어가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러한 스펙터클을 확대 재생산하지만 않는다면, 아울러 우리 모두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테러리즘에 움츠려들지만 않는다면, “손에 쥔 패가 하나도 없이 판을 흔들려는”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결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 동전 한 닢이 내는 큰 소리에 더 많은 이들이 동요할수록 테러리스트들의 ‘판 흔들기’는 점점 그 진동을 더해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더 많은 공포가 더 많은 감시를 낳고, 더 많은 차별과 더 많은 군인들이 더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드는 악순환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다.

 

“길을 가다 눈에 띄는 카페나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는 것. 이 세상 거의 모든 곳에서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일을 이곳에서는 할 수가 없다. 상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는 소지품을 샅샅이 수색하는 무장경비원이다. 무장경비원을 고용할 수 없는 상점이라면 문을 걸어 잠근 채 노크하는 손님을 구멍이나 카메라로 확인한 뒤 문을 열어준다. 일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풍경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지난 2002, 한 달에 다섯 번 꼴로 폭탄이 터지던 예루살렘의 풍경을 묘사한 <디애틀란틱>(The Atlantic)의 기사다. 분명 이것은 테러에 맞선다는 것을 명분으로 우리가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사회 모습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어차피 실질적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처하는 평화의 방벽도 결국 군대와 경찰과 정보기관이 아닌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용기를 요구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지난날 우리를 권력에 맞서 떨쳐 일어나게 만들었던 용기만큼이나,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맞서 매일 아침 카페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즐길 용기’를 요구받고 있는지 모른다. 유네스코는 그 용기가 교육으로부터,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공포와 현실을 구분해낼 수 있는 지식과 교양으로부터 길러질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위원

 

참고자료

UNESCO , 2017

foreignpolicy.com The Soft Logic of Soft Targets

theguardian.com Yuval Noah Harari: the Theatre of Terror

theatlantic.com The Logic of Suicide Terro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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