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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커버스토리 / 유네스코와 교육 그리고 학교 폭력과 괴롭힘 이야기
작성일 2017.03.02
담당부서 홍보소통팀 분류 기획

[729] 커버스토리

유네스코와 교육 그리고 학교 폭력과 괴롭힘 이야기

 

 

 ‘국번 없이 117.’ 대체 무슨 번호일까. 바로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폭력 신고상담센터’의 대표전화번호이다. 이 상담센터에는 하루 평균 200건 가까운 신고 및 상담 전화가 걸려오는데,

방학 때는 급감하고 개학 이후 급증한다. 학교가 더 이상 안전한 배움터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처럼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유엔은 “학교폭력 및 괴롭힘이 전 지구적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마르타 산토스 파이스(Marta Santos Pais) 아동폭력방지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이하 유엔 특별대표)의 보고 등에 따르면 매년 2 4600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교폭력 및 괴롭힘을 겪고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술적으로 보면 하루에 67만 명이 넘는 지구촌 아이들이 학교 안팎 어디에선가 폭력과 괴롭힘에 희생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난 1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서울 명동 롯데호텔에서는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나날이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및 괴롭힘 문제의 해법을 찾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유네스코와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소장 한유경)가 공동 주최한 ‘학교폭력 및 괴롭힘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심포지엄에는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광조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장, 최수향 유네스코 본부 국장, 산토스 파이스 유엔 특별대표를 비롯해 학교폭력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크리스티나 살미발리(Christina Salmivalli) 핀란드 투르쿠대학 교수 등 75개국 250여 명의 전문가, 정책입안자 등이 참석해 정보를 공유하며 뜨거운 논의를 펼쳤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유네스코의 <학교폭력과 괴롭힘 국제현황보고서>(School Violence and Bullying: Global Status Report, 이하 유네스코 보고서)도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유네스코와 유엔, 유엔 산하기구 및 세계 각국의 학교폭력에 관한 조사 및 연구 자료를 집약한 것으로, 학교폭력 및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한 정보와 실행계획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유네스코 보고서에는 2016년 유엔 특별대표와 유니세프가 멕시코, 칠레,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등 18개국 청소년 1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는데, 응답자의 무려 2/3가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3~2006 19개 중 · 저소득 국가에서 이뤄진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학생건강조사(GSHS) 결과 11~13세 학생들 중 최근 한 달 안에 괴롭힘을 당한 비율은 34%, 매일 괴롭힘을 당한 경우도 8%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선진국도 학교폭력과 괴롭힘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11, 13, 15세의 소년소녀 중 15%가 최근 몇달 안에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으며(2006 아동폭력에 관한 유엔 연구), 프랑스에서는 2011 9~11세 아동 1 232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32%의 어린이가 학교에서 “때때로 언어 괴롭힘에 시달리”며, 35%는 “때때로 신체적 폭력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의 방아쇠, 누구에게 왜 당기나

유엔은 학교폭력을 크게 △신체적 폭력 △심리적 폭력 △성적 폭력으로 구분하는데, 사이버 괴롭힘(cyber bullying)을 포함한 괴롭힘 역시 폭력의 한 형태로 분류되어 있다. 신체적 폭력에는 ‘교사에 의한 체벌’이 포함돼 있으며, 심리적 폭력에는 ‘언어 학대’와 함께 ‘사회적 폭력’도 들어가 있다(그림1 참조). 사회적 폭력이란 편향된 고정관념이나 규범,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분위기나 압력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학교폭력과 괴롭힘은 왜 일어나는 걸까. 앞에서 소개한, 유엔특별대표의 18개국 설문조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조사에서 피해 청소년들의 25%는 외모, 다른 25%는 성별(gender) 혹은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 또 다른 25%는 인종이나 국적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그림2 참조). 반면 가해 청소년들은 좌절이나 분노 때문에, 혹은 또래집단에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남을 괴롭힌 것으로 나타났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특히 빈곤과 사회적 지위, 인종, 언어적 · 문화적 차이, 이주 혹은 이사, 장애, 외모, 성별 및 성적지향 때문에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 사회적 약자이거나 가장 상처받기 쉬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학교폭력과 괴롭힘을 당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과 괴롭힘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성별과 사회규범, 그리고 더 넓은 맥락에서 사회구조적 요인 역시 포함돼 있다. 2014년 인권감시 보고서에는 인도의 4개 주에서 학교 당국이 하층민과 회교도 아동들에게 저지른 심각한 차별과 신체적 폭력이 인용돼 있는데, 이는 학교폭력이 사회구조적 요인과 맞닿아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학교폭력 및 괴롭힘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침묵’ 때문이기도 하다. 2016년 유엔 특별대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괴롭힘을 당하는 아동의 30%는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않으며, 30%는 어른에게, 30% 이상은 친구나 형제자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에게 말하는 경우는 채 10%가 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로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껴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알지 못해서”, “괴롭힘이 일반적인 것이라 여겨서” 등을 꼽았다(그림3 참조). 아동폭력 문제 전문가들은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이 신고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복이나 반작용에 대한 공포, 교사 및 어른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발생하는 폭력 및 괴롭힘 사건이 조사나 통계의 수치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이버 괴롭힘의 경우, ‘침묵’의 이유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상당수 피해학생들이 자신의 컴퓨터, 휴대전화를 (부모에게) 압수당하거나, 인터넷 접속을 금지당할까 두려워 해 이를 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괴롭힘 피해자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괴롭힘을 당했던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을 피해 사이버 세상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곳조차도 온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괴롭힘, 죽음보다 깊은 병

지난 2011년 개봉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불리(Bully)>(‘불리’는 괴롭힘 혹은 그 가해자를 일컫는 단어다). 실제로 집단괴롭힘을 당한 11~17세 학생 5명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보면 학교폭력과 괴롭힘이 한 사람, 한 가족의 일생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들 피해학생 중 2명은 학교폭력으로 자살을 했고, 남은 3명 중 한 명은 성정체성 때문에 왕따를 당하다 학교를 중퇴한다. 다른 1명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통학버스에서 가해자들을 권총으로 위협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장애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던 또 다른 1명은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하고 만다.

 

이들 피해학생이 보여준 행동은 사실 유네스코 보고서가 지적하는 ‘학교폭력과 괴롭힘의 부정적 영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폭력과 괴롭힘은 신체는 물론 정신적·정서적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피해학생들이 우울증, 스트레스, 공포, 불안감, 자신감 상실, 자존감 저하를 겪을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측면에서도 학교폭력과 괴롭힘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012년 유엔 특별대표 리포트에 따르면 ‘폭력과 협박의 사이클은 괴롭힘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에게 학업 성취도의 저하’를 초래한다. 2010년 영국의 괴롭힘 피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피해 학생은 그렇지 않은 또래 학생에 비해 학업이나 취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두 배나 높고, 성인이 돼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학업, 취업을 포기한 경우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은 3, 범죄에 빠질 가능성은 5배나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아동 및 청소년 폭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거나 일으키게 되는 질병과 질환, 사건사고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때문이다. 2012년 유엔 특별대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학교 폭력이 (보건, 복지, 행정 등의 문제로) 초래하는 경제 비용은 한 해에 79억 달러(9 8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우리나라 외교 · 통일 예산(4 6000억 원) 2배에 가까운 액수이다.

 

교실의 평화, 언제 가능할까

세계 각국은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관련법의 제정과 집행이다. 강력한 법 집행이야말로 폭력과 괴롭힘이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국가적 차원에서 학교 폭력 퇴치 및 학생 복지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호주에서는 2010년 ‘국가안전학교체계’(NSSF)를 만들어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폭력 예방과 학생 복지를 위한 정책, 커리큘럼, 참고자료 등 다양한 자원을 학교에 제공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중앙정부가 두 가지 프로그램을 교육기관에 지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로(Zero) 프로그램’이다. 400곳이 넘는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에게 특히 유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교직원들에게 괴롭힘을 식별하고 해결하고 예방하는 방안, 일상적인 학교 업무 내에서 괴롭힘 방지를 위한 활동들을 통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역할극, 토론 및 발표,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 학생들이 괴롭힘을 이해하고 피해학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케 해 주는 키바(KiVa) 프로그램으로 ‘유럽의 왕따 공화국’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씻어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괴롭힘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학교 전체의 문제로 보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살미발리 교수도 언론 인터뷰에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침묵하는 다수’가 괴롭힘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침묵하는 다수에게 가르치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학교폭력과 괴롭힘을 막기 위해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협력과 ‘포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교가 그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는 학교야말로 교육을 통해 폭력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고, 비폭력 행동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학교에서 ‘가해학생 퇴학’과 같은 일반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단지 문제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학교에 설치된 CCTV나 교사 개인에게만 계속 역할과 책임을 지운다면 과연 ‘교실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학교폭력과 괴롭힘은 학교의 문제이자 우리 사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괴롭힘의 주요 형태는 따돌림이다. , 누군가를 홀로 남겨놓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가 새로운 인류의 목표로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슬로건은 바로 “단 한 사람도 뒤쳐지지 않도록 하겠다”(Leave No one Behind)는 것이다. 이제 유네스코와 함께 우리가 학교폭력과 괴롭힘에 맞서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해졌다. 우리의 꿈나무들을 폭력과 괴롭힘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도록 놔둘 것인지, 아니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다가갈 것인지, 이제 우리 모두가 변화와 행동으로 대답할 차례다.

 

송영철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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