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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특집 / 누가 피치(pitch) 위를 전쟁터라 부르는가
작성일 2017.03.02
담당부서 홍보소통팀 분류 기획

[729] 특집

누가 피치(pitch) 위를 전쟁터라 부르는가

 

 

 차별과 싸우는 도구로서의 축구에 주목하는 유네스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및 ‘레알마드리드’. 유네스코가 피치(pitch, 운동장) 위에서 인종주의와 차별을 몰아내기 위해 협력 중인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들이다. 3 21일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을 맞아, 지난 2015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축구장 내 차별보고서 <? 무슨 색?>을 중심으로 축구장 안팎에서의 차별의 역사와 이를 철폐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유네스코의 활동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스포츠, 축구

축구는 아름다운 스포츠다.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활용해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것’으로 설명되는 단순한 규칙은 배운 이든 못 배운 이든,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어느 정도의 신체적 장애와도 관계 없이 축구를 ‘모두의 스포츠’로 만든다. 축구는 또한 공 없이 (우리 아버지들이 ‘무용담’으로 들려주셨듯) 돼지 오줌보나 빈 깡통, 종이 뭉치로도 즐길 수 있는 ‘빈자의 스포츠’이기도 하며, 근력이나 키 등 타고난 인종적 조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평등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들 덕에 축구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티벳 산골 마을에서부터 두바이의 사막이나 캘리포니아 고급 휴양지에서도 모두 볼 수 있는 전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수가 유엔 가입국 수보다 많은 것이나, 독일축구협회(DFB)가 세계 최대 예산과 최대 회원을 거느린 단일 스포츠 단체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단순성과 포괄성, 그리고 시공을 초월하는 인기덕에 우리는 축구 경기를 ‘사회의 축소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역시 충분히 타당한 비유다. 축구 선수들의 인종 구성은 흑인 위주의 농구나 백인 및 히스패닉이 주도하는 야구 등에 비해 훨씬 다양하다. 만수르(세계 최고 부호 중 하나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의 정치인이자 영국 축구클럽 ‘맨체스터 시티 FC’의 구단주) 같은 거물도, 베베(노숙자 출신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입지전적 선수) 같은 거리의 소년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축구이기 때문이다.

 

팀 스포츠의 역설

이처럼 전 세계인이 즐기는 아름다운 스포츠이지만, 축구 안에는 바로 그 아름다움을 오염시키는 태생적인 역설 또한 숨겨져 있다. 그 역설이란 ‘한 팀이 상대 팀을 이기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라는 데 기인한다. 축구뿐 아니라 협동심과 리더십 등의 교육적 가치를 어필하는 모든 팀 스포츠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와 ‘그들’로 팀을 나눠 서로 ‘투쟁’하지 않고서는 게임을 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모든 게임이 ‘경기장 안에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동네 축구시합에서조차 ‘친선전’과 ‘부녀회장배 결승’이 팀원들에게 주는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겨야 하는 이유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여기에 주목하는 팬들이 늘어날수록 게임은 본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우리’와 ‘타인’의 이분법은 손쉽게 타인을 배제하고 비방하고 모욕하는 분위기를 만들며, 이러한 분위기는 인종, 성별, 종교 등과 관련된 ‘차별’이 번성하는 최적의 토양이 된다.

 

축구의 산업화, ‘불편한 진실’을 몰아내기 시작하다

축구 인기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도 이러한 차별적 언행은 축구장 안팎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되었다. 이는 인종 구성이 다양한 지역일수록, 그리고 20세기 초 ‘나치 독일’의 경우에서처럼 스포츠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큰 곳일수록 두드러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축구장에서 차별과 혐오의 분출이 보다 만연하게 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 이후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30여 년간의 전후 호황기가 끝나고 석유 파동과 경제 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극우 정치 세력의 부활 등이 나타난 시기와 일치한다. ‘사회의 축소판’이란 평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축구장 역시 ‘훌리건’들로 대표되는 차별과 폭력적 성향이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장소가 된 것이다.

 

축구장 내에서의 차별과 폭력에 대처하는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의 클럽팀 간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가 출범하면서 축구 관련 단체들은 축구를 ‘고급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정화 작업을 펼치며 특히 인종차별과 같이 ‘온 가족이 즐기기에 불편한 요소’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유럽 축구팀 내 외국 선수들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은 위법’이라는 ‘보스먼 판결’(Bosman ruling)이 나오면서 각 축구팀 내 인종 구성도 극적으로 다양해졌다. 이후 지네딘 지단 등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자들 위주로 구성된 프랑스 대표팀과 메수트 외질 등 해외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독일 대표팀이 각각 1998년과 2014년 월드컵을 제패하면서 축구는 ‘다양성의 스포츠’라는 이미지도 얻게 된다. 유네스코 역시 지난 2013년부터 ‘유네스코 컵’(UNESCO CUP)을 개최하고 유벤투스와 레알마드리드 등 세계 최고 팀들 간의 매치를 통해 인종주의 및 차별 타파를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차별과의 싸움, 승리하고 있을까?

지난 15년간의 여러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사례와 통계들은 경기장 안에서 차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 35개국 150여 개 단체가 참여해 축구장 내 인종주의를 감시하는 네트워크인 FARE(Football Against Racism in Europe)는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열린 64개의 공식 경기 중 12개 경기에서 차별과 관련한 사례가 보고되었다고 집계했다. 이들 12건의 사례 중 6건은 신나치주의 및 백인우월주의 관련 사례였고, 피부색(아프리카계 인종)이나 성소수자와 관련한 조롱이 각 각 3건씩이었다. 최고 수준의 모니터링이 집중되는 월드컵에서 열린 경기의 약 18%에서 차별과 관련한 ‘공식 보고’가 있었다는 점은, 공식 보고되지 않은 건들과 미디어 관심도가 떨어지는 월드컵 이하 하위 레벨 경기를 감안할 때 축구장에서 ‘차별 제로’를 선언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디어 커버리지 및 스마트폰을 활용한 관중들의 기록 여건이 나아지면서 경기장 내에서 선수들 간의 언행, 서포터즈들의 구호나 행동으로부터 인종차별적 요소를 잡아내는 것은 예전에 비해 훨씬 명확하고 쉬운 일이 되었다. 반면 인종 문제 외적인 측면, 예컨대 여성, 성소수자, 장애우 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여전히 체계적인 정량화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례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여성혐오’(misogyny)와 관련한 사건은 단 한 건도 보고된 바 없지만, 관련 전문가들은(여전히 남성 관중이 절대 다수인 스포츠에서) 이와 같은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축구장의 젊은 여성”들이 미디어 카메라에 반복적이고 경쟁적으로 노출되는 경향 역시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통한 ‘보이지 않는 차별’의 흔한 사례다.

 

전선(戰線)이 비교적 명확한 인종 및 여성 문제와 달리, 성소수자 차별 같은 문제는 유관 단체 및 팬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게이 축구선수’와 관련해 현재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주요 리그 축구 선수는 전무하며, 극히 일부 선수들이 은퇴 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바 있다. 유네스코의 <? 무슨 색?> 보고서 작성을 위한 인터뷰에 참여한 다수의 전문가들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축구계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터부’(taboo)”라며, “동성애 혐오(homophobia)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 개선에 걸린 것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 말했다. 한 전문가는 또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가 너무나 오랫동안 ‘스타디움 언어’(경기장에서 응원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적 언사)로 기능해 온 탓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팬들은 자신들의 구성원이나 응원 대상 중 일부가 게이, 레즈비언, 혹은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존중이 없다면, 게임도 없다

인종주의와 차별이 어느 한 순간 마법과 같이 피치 위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로지 사회 전반의 점진적인 인식 개선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축구가 지금보다 더 포용적이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해 모든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협력적인 대응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유네스코 역시 적극적으로 축구계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지구촌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와 이민족혐오, 남성우월주의, 동성애혐오 등을 몰아내는 데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타인을 모욕하고 위협할 권리가 축구장 입장권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존중이 없으면 게임도 없다”(No Respect, No Game) 캠페인을 스페인의 거대 홍보회사 프리사(PRISA)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는 교실에서의 공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전해주는 강력한 교육 도구다. 친숙함과 인기, 접근성 면에서 다른 스포츠를 압도하는 축구는 그 중에서도 더욱 빼어난 가치를 갖고 있다. 유네스코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디선가 열리고 있을 축구 경기를 통해, 스타디움은 그 자체로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아닌 존중과 배려와 정정당당한 경쟁을 가르치는 시민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격렬한 감정 분출 없이 보는 축구는 얼마나 맨숭맨숭할까. 유네스코 보고서의 인터뷰에 응한 많은 관계자들조차 “(지역 및 민족에 기반한) 차별은 축구 경기의 소금과도 같은 것”이라 말할 정도로, 우리는 응원을 빌미로 무심코 ‘우리가 아닌 이들’에게 공격적이 된다. 그 공격성을 100% 박멸하기란 불가능하며, ‘축구는 전쟁’이라는 수사 역시 축구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네스코는 ‘전쟁’에도 ‘제네바 협약’이라는 금도가 있듯, ‘전쟁 같은 축구’에서도 모

든 이가 최소한의 금도를 지킬 수 있길 바란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respect) 말이다.

 

 

참고자료

unesco.org “‘No respect no game': UNESCO and PRISA Radio join forces to end racism and

discrimination in football

©UNESCO 2015 COLOUR? WHAT COLOUR? - Report on the fight against discrimination

and racism in football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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