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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주재관 서신 / 기억을 함께 나눈다는 건 미래를 함께 만든다는 것
작성일 2017.03.02
담당부서 홍보소통팀 분류 문화

[729] 주재관 서신

기억을 함께 나눈다는 건 미래를 함께 만든다는 것

 

1933 5 10일 베를린 오페라 광장. 나치에 의해 2 5000권의 책이 불태워졌다. ‘비 독일정신의 근절’이라는 명목이었다. 이 중엔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2 5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전시회. 오랜 시간 도서관 서고에서 잠들어 있던 인류사의 중요한 책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한 도서관 사서의 특별한 노력이 아니었으면 이 책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1992 8 25일 사라예보에 위치한 보스니아 국립도서관. 150만 권의 장서가 화염에 휩싸였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도서관이 폭격을 맞은 것이다. 이때 15만 권이 넘는 희귀본과 필사본이 함께 소실되었다.

기록유산이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정체성의 매개체, 지식과 지혜의 원천, 인류 경험의 전달자로 정의되는 인류의 소중한 자산, 기록유산. 기록유산은 그 가치만큼 환경에, 갈등에, 제도에 너무나 약한 존재이다.

이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대상에 눈을 돌려, 유네스코가 기록유산 보호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25년이 되었다. 기록유산을 잘 보호하고, 널리 알리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기록유산 등재 제도. 우리에게는 세계기록유산사업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이름은 ‘세계의 기억 프로그램’(Memory of the World Programme)이다. 한 국가의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을 공인하는 제도이기보다는, 기록유산이 담고 있는 특별한 기억을 세계와 함께 공유하는 사업이며, 그럼으로써 과거를 배우는 작업이다.

인류의 기억을 담은 기록유산 348. 이 목록에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기록, 세계사를 바꿔 놓은 발명·탐사의 기록, 한 시대와 민족의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기록, 장인정신의 결정체로서의 기록 등 빛나는 유산과 함께, 전쟁이나 폭력의 흔적과 같은 인류의 어두움을 담은 유산들이 나란히 올라 있다.

 

 

 

식민지역사, 노예무역, 인권운동, 전쟁, 학살 등 70건에 달하는 이 아픔의 기록들은 그 어떤 위대한 기록유산보다 더 큰 정서적 힘을 발휘한다. 총살 직전 찍은,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의 사진 한 장(‘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물’ 2009년 등재), 인간의 착한 본성을 여전히 믿는다1)고 적었던 안네의 마지막 일기(<안네 프랑크의 일기> 2009년 등재), 1차 대전에서 발생한 700만 명 포로들의 송환에 대한 이야기(‘국제전쟁포로기구 기록물’ 2007년 등재).

기록물 하나하나가 불러일으키는 강한 정서적 움직임은 곧 ‘이러한 비극이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기록유산이 왜 중요하고, 또 왜 우리가 보존에 힘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기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미래 즉 평화의 미래, 발전의 미래를 함께 만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록유산사업이야말로 전쟁의 반성과 치유를 위해 태어난 유네스코의 탄생 배경,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평화를 심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헌장 정신을 가장 닮은 사업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25년 동안, 인류의 기억을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를 이어온 ‘세계의 기억 프로 그램.’ 이 프로그램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 개선 작업이 현재 한창 진행 중이다. 의미 있는 이 사업을 더 안정적이고 더 믿음직하게 만들어가는 개선 작업에 있어서 쟁점은 ‘기록유산 목록 선정과정에 정부의 관여를 보장해야 하는가’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세계의 기억’은 모두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유산인가? 아니면 인류가 기억해야 할 유산인가? 2012, 세계의 기억 사업 20주년을 맞이하여 보코바 사무총장이 한 말이 여기에 답을 주는 듯하다. “인류 공동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은 우리의 기억에 있으며, 이 기억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기록유산이다.

현재 회원국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기록유산사업이 유네스코의 초심을 지켜내면서 견고한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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