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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호] 임기만료 맞은 민동석 한위 사무총장 / 비전과 열정의 4년을 돌아보다
작성일 2016.11.01
담당부서 커뮤니케이션팀 분류 기획

[725] 임기만료 맞은 민동석 한위 사무총장

비전과 열정의 4년을 돌아보다

 

 

지난 2012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 19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해 한위 조직에 변화의 큰 바람을 불어넣어 온 민동석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말로 4년 임기를 마쳤다. 그의 재임 시절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비전과 열정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한위 역사상 최초의 미래 비전 선포 등 그가 수많은최초를 기록하며 변혁을 이끌었고, 식지 않는 열정으로 후원개발과 같은 큰 도전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미래를 향해 늘 멈추지 않았던 그 발걸음을 되짚어봤다.

 

한위는 지난 2014 2월 창립 60주년을 계기로국민과 함께 만드는 평화, 배움으로 꿈을 이루는 지구촌이라는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국민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가난한 지구촌 이웃들에게 배움으로 희망을 갖게 해주려는 한위의 새 꿈이 시작된 것이다.

 

한위 꿈꾸게 한 최초의 비전

사실, 한위의 미래 비전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한위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토대로 탄생했다. 민 총장 취임 초기에 명동 유네스코회관 앞에서한위의 인지도를 알아보는 거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그에게 충격적이었다. 시민 대부분이 유네스코를 유니세프로 혼동하거나 아예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민 총장이 한위가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가 그간 폐쇄돼 있던 회관 옥상생태공원을 재정비해 시민의 휴식처로 개방하고, 방치된 기계실을 보수해 배롱나무카페를 열고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 총장은 국민들 사이에서 한위의 존재감이 옅어진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한 대표 사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취약한 재정 기반 때문에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는 여러 사업에 치중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간판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민 총장은 사업의 가짓수를 줄이고 한위가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사업 위주로 개편에 나섰다. 오랜 기간 유네스코회관 외벽에서 사라졌던 ‘UNESCO’ 영문 간판도 새로 달도록 했다. 회관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한위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소명의식 담은 중점사업

‘바뀌어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한 민 총장과 한위 직원들은 미래비전과 실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비전포럼을 열고 여러 차례 내부 토론도 하며 고민을 공유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저개발국 교육 지원차세대 글로벌 인재 육성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기여 등 3대 중점추진 과제였다. 특히 저개발국 교육지원 사업에는과거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교육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이 이제는 가난한 나라의 자립을 교육으로 도와야 한다”는 민 총장의 소명의식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유네스코 브릿지 사업이 한위만의 차별화된 대표 사업으로 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차세대 글로벌 인재 육성 사업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미래세대를 바른 인성과 역량을 갖춘 세계시민, 나아가 글로벌 리더로 육성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일이라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그 시동 키가 된 것은 민 총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유네스코키즈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습과 체험을 통해 세계시민의식과 글로벌 리더의 꿈을 심어주는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탄탄히 자리 잡았다. 이후 세계시민교육이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자 민 총장은 한위의 초중고 및 대학생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합하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도입해 2015 7유네스코세계시민학교를 개교했다. ‘실천 중심의 교육으로 실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한위의 세계시민학교 프로그램은 학생들과 교사들의 호평 속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후원개발, 가시밭길을 헤치며

재임 기간에 민 총장이 내린 가장 큰 결단을 꼽는다면, 한위 최초의후원개발 사업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 그가 후원개발을 구상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브릿지 사업 등 중점추진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위 사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후원개발 사업은 처음부터 커다란 벽에 부딪혀야 했다. 안행부가 교육부 장관이 한위의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국민 모금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난관과 마주친 순간, 민 총장이 택한 것은 정면돌파였다. 그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도움을 청해 후원개발 지지 서한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 국내 5대 로펌으로부터 한위가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데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받아냈다. 결국 6개월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한위는기부금품 모집에 적합한 기관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후원개발이라는 가시밭길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다른 아이들의 굶주림이나 질병에는 마음을 열어도, 교육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 총장과 한위 직원들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민 총장은 신문과 방송, 각종 행사 등 말할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대한민국이 지구촌 가난한 이웃들의 벗이 되어야 하는 이유,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교육이라는 사실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그의 손에는, 6·25 전쟁 직후 유네스코가 세운 인쇄공장에서 발행된 초등학교 교과서가 들려 있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

정기후원자 52명에 모금액 330만 원. 모금 첫 달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뜨거운 사명감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마음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지금, 정기후원자 2800여 명에 월 모금액도 6000만 원에 이를 만큼 후원개발 사업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한위의 호소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국민들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후원개발 사업의 성과가 아닐까 싶다.   

 

국민배우 이영애와 고은 시인을 비롯해 팝페라테너 임형주,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 등 민 총장이 위촉한 한위 친선·홍보대사들의 활약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이들 대사들은 한위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유네스코 이념을 국민 속으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냈고, 후원개발에도 재능기부와 자선콘서트 등으로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월 창립기념일 만찬에서 이삼열 전 한위 사무총장은 민 총장을 두고 이런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비전 선포, 후원개발 같은 큰일들은, 이전 총장들이 생각은 했지만 실행 못했던 것들인데, 민 총장은 그것들을 한 번에 다 해내더라.” 그만큼 민 총장의 뚝심과 돌파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꿈을 향한 도전을 결코 멈추지 않았던 민동석 사무총장.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앞으로도 미래를 향한 그의두드림’(Do Dream)은 끝없이 이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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